생명의 약속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생명의 약속에 따라 하느님의 뜻으로(딤후 1:1)
인간은 아직 생명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아니 지독한 무지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도 명확한 본질적 분석적 정의가 실려져 있지 않습니다. 모르기에 정의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단 생명을 지닌 존재를 생명체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죠. 생명체의 기본 단위가 세포라는 것도요.
지독한 무지라는 것은 세포가 맹목적으로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이 대세이고 또 그것이 과학적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세포가 어떤 것인지 기본적인 것들만 알아도 그런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백질 심지어 아미노산도 그렇고 전자도 질량, 전하, 스핀의 3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정밀한 수치로 정해져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우발적으로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은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체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인간 세포가 다른 동물들의 세포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대개 수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성서에도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선언되어 있죠. 위해서란 목적을 나타내죠. 목적이란 도달하는 최종결과를 의미합니다. 인간도 결국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죠.(베후 2:11) 그러나 이것은 심리적 논리적 뇌과학적 생물적 지향과도 모순됩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영원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인간들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죽기 위해서 사는 짐승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죠.
그러나 원한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창조주만이 인간에게 생명의 연속 즉 영생을 부여할 수 있고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창조주만이 약속할 수 있고 이 약속을 전하기 위해 성서가 쓰인 것이죠.
누구든 생명을 선택하면 누릴 수 있습니다.(신명 30:19) 이를 믿지 않고 거부하면 99.9%의 인류처럼 곧 죽어 영원히 소멸되게 됩니다.
인간 생명이란 단지 존재의 지속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갖 보람 있는 활동과 행복의 향유를 의미하죠.
선택하면 거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