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의
사람들은 대개 보고 듣는 경험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원리적으로는 터무니없습니다.
과학의 2대 기초는 논리와 관측입니다. 교집합인 것이죠. 반드시 논리적이어야 하고 관측되어야 과학적 지식으로 인정되는 것이죠. 그런 지식만이 실용적이 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고 ‘감각법칙’이 있어서 인간의 감성은 진위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는 원칙 자체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관측보다 앞서는 논리 자체도 보이지 않는 것이죠.
비행기나 비행기가 나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공기보다 무거운 것도 공중에 떠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양력이나 양력의 발견이나 양력의 이해는 보이지 않죠. 정신 가운에 있는 상태의 비행기의 설계도 보이지 않죠.
말하는 사람의 말의 내용 글 쓰는 사람의 글의 내용도 모두 정신의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죠.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먼저 보이지 않게 정신가운에 있던 것입니다.
히브리 11:3절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와 존재하게 되었다.
사실 보이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도 종종 폭파되어 사라지죠. 그러나 양력이나 비행기의 설계는 믿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존재보다 더 확실한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 11: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인간 자신보다 그것을 산출한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존재가 더 확실한 것이죠.
인간이 만든 보든 제도보다 그것을 산출한 보이지 않는 배후의 영적 존재가 더 확실한 것이죠.
물질적인 것은 그 원인인 영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아직 존재하거나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면 물질적인 것은 언제든 산출될 수 있습니다.
영적 낙원은 오늘날 이미 실현되어 있습니다. 1.000만 정도의 사람이 그 낙원을 누리고 있죠.
그러므로 문자적인 낙원, 물질적인 낙원이 실현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필연적인 일이죠.
인간들은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두 부류입니다. 살사람과 죽을 사람의 두 부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