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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an 06. 2025

스스로 높이기는 해도

스스로 높이기는 해도   

   

한 식당에서 한 노인이 “나는 헌법재판관이 국가의 어른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야바위꾼이더군.”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12개의 나무조각으로 된 물통이 12개의 나무조각의 높이가 다 다르다면, 가장 높은 것이 12이고 가장 낮은 것은 3이라면 물동이에 찰 수 있는 물은 3입니다. 활동의 성과나 전제적인 평가는 그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죠.   

   

평균수치라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높이가 4인 물통보다도 가치가 없는 것이죠.  

    

얼핏 보기에는 가장 높은 것이 눈에 띄어 주목을 받을 수 있죠. 추천받거나 임명을 받아 혹은 선출이 되어 어떤 권력이나 권한을 가질 수 있죠.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낮은 나무조각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추천이나 임명이 취소되거나 자진사퇴하는 경우도 있죠.      


얼마 전까지 고위직이나 선출직 지위에 있다가 지금은 수감된 사람도 있는 것이죠. 가장 낮은 나무 조각의 높이가 0이거나 심지어 -라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직책에서 쫓겨나 가만히 있는 것도 과분하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스스로 고위직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국가 죄고 존엄, 지존이라고도 하는 것이죠. 사람을 그 위치에 두고 스스로 섬기면서 흐뭇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함이 드러나도 자기 정파이면 감추려 하고 보충해주기까지 하는 것이죠. 나무를 덧대어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파인 경우 물통 자체를 깨트리려 하죠. 가장 낮은 부분만을 부각해 물러날 뿐만 아니라 평생을 감옥살이해야 한다고 아우성인 것입니다.   

   

북한의 지존도 그 지역에서는 높임을 받지만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완전 그 반대이죠. 북한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높여진 자들이 그러합니다.      


인간에게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숭배욕이 있어 그 자체가 원천적으로 부당한 어떤 권리라는 것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부여하고 신으로 만들어 안정감을 가지려 하지만 인간의 악과 고통은 바로 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혼란과 혼동의 도가니로 만드는 것이죠.      


인간 개개인도 그렇습니다. 개인들에게는 많은 측면들이 있고 들쭉날쭉 하죠. 삶의 궁극의 질과 평가는 가장 낮은 것에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성 자체가 -인 나무조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도 누리지 못하고 우환가운데 죽어 영원히 소멸되게 만드는 원인이죠. 없느니만 못한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나무조각의 길이가 -라는 것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죠. 인간의 상태가 그만큼 부조리하다는 것을 의합니다.      

아무리 두드러져 주목을 받는 측면이 많다 하더라도 한 가지 면이라도 그런 면이 있다면 그의 인생은 그에 맞추어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이를 모르고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부당하게 높여진 모든 것은 창조의 법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자존심이라는 것 자체가 교만의 동의어이며 스스로 부당하게 높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인위적으로 높음이 부여된 모든 것들은 필연적인 파멸의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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