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이 많긴 해도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의인도 전혀 없지만 선행이 전혀 없는 악인도 없을 것입니다.(전도 7:20)
국가나 정부는 가장 크고 공식적인 악이지만 가장 크게 선행을 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만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악명 높은 북한의 통치자도 수해민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되기도 하죠.
종교는 영적으로 거짓을 보급하는 대표적인 기관이지만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행하는 선행도 많은 것입니다.
기업체들도 기부하는 경우들이 많으며 개인들도 많은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행을 하는 동기나 목적이 어떠하든 감사해야 하고 축복을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자기만족이나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이 안심하기 위해 혹은 천당 갈 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일 수 있겠지만 인간 본연의 사랑과는 관계없을 수 있습니다.
선행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해도 인간의 본연의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을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간 자체, 인격의 부실함을 아무리 보충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조직이나 기관, 집단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태 7:22,23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악귀들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전혀 알지 못하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물러가시오!’
내가 의인에게 “네가 반드시 계속 살 것이다” 하고 말한다 해도, 그가 자기의 의를 믿고 그릇된 일을 한다면, 그의 의로운 행동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한 그릇된 일 때문에 죽을 것이다.(에스겔 33:13)
인간 본연의 사랑이나 의가 인격이 된 사람은 겉보기에 선행을 하면서 한편으로 악을 행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인간 본연의 의를 인격으로 새롭게 입게 된다면
악인이 자기의 죄에서 돌아서서 공의와 의를 행하여, 생명의 법규대로 걸어 그릇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계속 살 것이다.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은 죄 가운데 어느 것도 문제시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의와 의를 행하였으니, 반드시 계속 살 것이다.’(에스겔 33:14~16)
과거의 과오는 없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선행 혹은 악행과 관련된 원칙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옛 인간성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성을 입으십시오. (골로새 3:9,10)
이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권고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은 그 가치관과 습관이 절망적으로 굳어 있습니다. 돌이킬 가능성이 없는 것이죠.
구스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바꿀 수 있느냐? 그럴 수 있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예레미야 13: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사람은 창조주의 도움으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해도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마태 23:26)
이 악한 세상가운데 선해 보이는 면면들이 아무리 많아 보여도 그것은 본질상 전혀 무의미한 것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