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긍정적으로
기분
최대한 긍정적으로
근본적으로 오류인 어떤 현상들에 대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엄격히 제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제어된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이웃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고 또 말씀(성서)에서도 그런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일관성 있게 정치나 종교 그리고 그 지도자들에 대해 정죄나 저주를 언급합니다. 원천적으로 거짓이고 최종적으로 멸망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일시적으로 허용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는 관련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반대해서는 안 되고 순응하라고 하며 심지어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를 하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이지만 심지어 불의하다 하더라도 정통적인 통치권자에게 존경을 나타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편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저주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은 신의 형상을 닮아 공의, 공정, 정의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면이 있습니다. 불의, 불공정을 배척하려 하는 것이죠. 그러나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고 그런 가치관 자체가 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르주아들은 하루라도 일찍 죽어주는 것이 그나마도 마지막으로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지만 실상은 우파인사들도 다른 면으로 비슷한 극단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어록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삭막한 무신적 처세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꺼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들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세속적인 처세술, 권모술수 같은 것입니다. 정의나 공정, 원칙은 구호상일뿐인 것이죠.
확고하게 그런 생각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실제 정치판에서 세력을 가질 수 있기도 하죠.
일반 민중은 그런 면에서 덜 철저합니다. 나름 정치인이 불법하게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그에 따른 정치적 행동을 하게 되죠.
그런데 단지 신념상의 행동은 아닙니다. 다분히 감정이 개입되죠. 순수하게 원칙적 신념적 이성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일단 특정 정파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반대 나 지지, 호불호를 갖게 되면 거의 무조건적이 되게 됩니다.
그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에 대한 쾌불쾌를 민감하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죠. 어떤 이슈에 있어 어느 쪽이 득세를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같은 욕이라도 자기편에 대한 것이면 언짢고 상대에 대한 것이면 그 욕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 결과를 지향하는 정치적인 목표가 성공을 거두기라도 하면 환호성을 지르면서 너무나 행복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큰 스포츠 경기 같은 데서 나타나죠. 소위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산다면 좋은 기분은 그것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기분 좋음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정파의 어느 한쪽에 가담하여 열렬히 정치활동도 하며 경기에서 응원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호의를 갖는 정치인이 통치자가 되면 엄청 기분이 좋고 그 반대면 나라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죠. 일종의 고통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어떤 열렬한 관심이나 활동은 꼭 신념에 의한다기보다 실제로는 어떤 기분 좋음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런 기분 좋음을 얻는 것이 마치 인생의 목적이나 되는 것처럼 집착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매우 혹은 은근히 기분이 좋거나 나빠지는 현상을 정치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그 어떤 정보나 지식보다 의식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이 잘 확립된 의롭고 이상적인 원칙에 온전히 고착하는지 허망한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불호를 갖거나 쾌불쾌를 느끼는지는 그가 진정한 행복을 향유할 조전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