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논리
기쁨은 좋은 감정입니다. 인간의 감정기능 역시 전적으로 부여받은 것이어서 태어나서 어느 순간에 감정이라는 것을 갖기 시작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감정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순간에는 어떤 감정상태에도 있게 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그것을 의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인간에게 논리기능도 있죠. 범주-개념-추리-판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되죠.
우주만물을 만든 창조주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를 생각할 때도 있죠. 논리 기능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는 둥 다양한 생각들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옳은 생각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논리기능이 주어진 것임에 있음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논리 기능이라는 기계가 있긴 한데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고 그것이 존재하는 목적이나 사용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쁨과는 반대되는 감정들을 갖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겸허해야 합니다. 자신이 마치 신이나 그 이상이 된 것처럼 주제넘게 어떤 결론을 임의로 내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다시 감정 문제로 돌아가면 “결과는 원인의 부분집합”이라는 법칙에 따라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면 신에게도 있는 것이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인간에게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죠.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지혜롭게 되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잠언 27:11)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단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신비’라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측면들이 있죠.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전도 3:11) 감정기능이나 논리기능 등등의 본질을 분석적으로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면이 있는 것이죠.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모른다고 해서 부모를 무시하거나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알게 되는 것은 나중이죠. 아이는 아는 기능 자체가 개발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참 논리(지혜)가 있는 사람들만이 신비를 점차 이해하게 되며 그 역시 큰 기쁨이 됩니다. 자신과 창조주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