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인간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많죠. 공통적인 것은 고분자 탄소화합물이라는 것입니다. 유기물이라고도 하죠. 식물성이거나 동물성이죠. 탄소의 신비한 특성에 대해 감탄해하는 과학자들도 많다고 하죠.
식물은 무기화합물을 합성하여 동물의 식량이 될 수 있는 것을 산출해 내죠. 광합성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한때는 인간이 초식성이었다고 하죠. 인간의 내장은 초식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죠. 그러나 어느 시점 이후로 잡식성이 되었죠. (창 9:3)
그런데 동물의 세계에 있어서는 먹이사슬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육식은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죠.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식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식물에 달려 있는 열매를 뚝 따서 식품으로 삼는 것은 전혀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죠. 식물에게는 감각세포가 없어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죠. 그런데 동물들도 어류이하의 통각세포가 없는 경우 과일 먹듯이 심지어 산 채로 삼킨다 해도 잔인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심지어 감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동물을 공격하여 비명소리가 나오게 하는 가운데 물어뜯거나 살을 찢어 피를 흘리게 하며 먹는 경우이죠. 인간의 관점에서 창조주의 사랑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조리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죠. 그런 상황의 부조리함은 성서에도 시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젠가는 그런 일이 없을 것도 묘사되어 있죠. 가장 사납고 대표적인 육식동물인 개과와 고양잇과의 동물들 그런데 개와 고양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도 평화로이 인간과 공존하고 있죠. 모든 동물들 사이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이사야 11:6~9)
그러나 육식동물은 원래 육식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생리적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죠. 그래서 아마도 물고기를 먹거나 죽은 동물의 시체만을 먹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도 포유류의 동물들이 식품으로 허용되기 전에도 물고기는 식품으로 활용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에너지원이 필요하죠. 식물은 주로 무기물, 동물은 주로 유기물을 섭취하죠.
그런데 동물들이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의 행복은 어느 정도일까요? 매우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에 대해서도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그러나 인간의 그것과 비교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씹지 않고 꿀꺽 삼키는 동물들도 있죠.
인간에게 음식은 단지 에너지 공급원일 뿐이 아니죠. 심지어 어느 유명인사는 사는 즐거움의 60%가 먹는 즐거움이라고 하기도 하죠.
인간의 감성적 창의성은 음식과 관련해서도 매우 활발하게 발휘되죠. 무수한 종류의 식품과 요리들이 개발되어 왔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음식에는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맛이라는 것이 있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인간의 주감과 상관이 있습니다. 매우 배가 고팠을 때 최대한의 맛을 느끼며 정신없이 흡입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모래 씹는 것 같을 때가 있고 심지어 역겨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들을 어떨까요? 그들도 에너지원이 필요할까요? 그건 모릅니다. 신접자들은 그들이 모시는 귀신들에게 음식을 바친다고 하고 커피 같은 것도 실제로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들이 마시는 것은 확인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짐승들과 같이 일시적으로 살고 마는 데는 지금처럼 음식을 먹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죠. 그러나 인간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양식이 필요한 것이죠. 정신적 혹은 지적 양식이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요한 4:14)
사람은 그런 것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매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의 두 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