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
종교나 정치의 자유 등등 원래 자유라고 전혀 할 수 없는 것들을 자유라고 속여 온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언론의 지유라는 것이 있죠. 비꼬는, 풍자하는 말이나 글 그림 등을 제지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지하려 하면 억압이라 하여 큰 반발이 있게 되죠.
“모든 악의적인 반감과 화냄과 격분과 소리치는 것과 욕설을 모든 악과 함께 여러분에게서 없애 버리십시오.” (에베소 4:31)
너희는 빈정거리는 자가 되지 말아라.(이사야 28:22)
“이제 여러분은 거짓을 버렸으므로,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십시오.”—에베소 4:25.
인간에게 욕이나 거짓을 표현할 자유라는 것은 애초에 없습니다,
인간들은 자유가 아닌 것을 자유라 하고 자유인 것은 공식적으로 제한받고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설악산이나 제주도에 가는 것은 제지받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원천적인, 자연법적인 자유이죠. 그런데 그러한 자유는 한반도 남쪽이라는 좁은 영역에서만 가능합니다. 원산이나 금강산에 가는 것은 제지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대부분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밖에 다른 면으로도 많은 부당한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에 대한 분별력이 없습니다. 종교활동이나 정치활동처럼 전혀 자유가 아닌 것을 자유인 것처럼 공식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죠. 가장 큰 악과 거짓입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헷갈려하고 있습니다. 소위 입틀막이라는 것을 하려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요. 종교나 정치활동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지역에 따라 선별적이 되는 것이죠.
지구에는 수백의 정부와 국가들이 있죠. 인간의 자유에 대해 임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란 인간의 임의에 따르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에 내재된 것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하는 것에 대해서도요.
인간들이 허용한다고 해서 자유인 것이 아니고 금지한다고 해서 자유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욕이라는 것은 세속의 법으로는 금지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조의 법에 의하면 사형죄입니다.(마태 5:22) 정치나 종교활동도 그러합니다.
살게 되는 사람은 자유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