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것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과제를 처리한다 해도 프로그램된 바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컴퓨터가 자유가 있다거나 의식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AI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어떤 생각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도록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생각이든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인간 의식 즉 마음에 대해서는 창조주만이 정확이 알 수 있으며 그 선언 그 언명에서 밝힌 바를 통해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물론 언어를 통해서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어를 통해서 알 수 있죠.
예레미야 17:9입니다.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겠는가?(The heart is more treacherous than anything else and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마음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은 인간의 범죄로 인한 후유증 때문일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일까요? 그건 잘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의 인간의 마음은 위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어떤 황당한 생각도 떠오를 수 있으며 또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알 수도 없습니다.
뇌에서 작용하는 형상신호 즉 생각신호라는 것은 자기 멋대로여서 인간이 참을 알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양자요동을 연상케 합니다. 알아낸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되는 것이죠. 상대성원리라는 것을 알아낸 아인슈타인이 대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자유라는 것은 이와 같은 자유분방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통제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유분방함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절입니다.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가장 깊은 생각을 조사하여
각 사람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
인간에게는 여기서 가장 깊은 생각이라고 한 어떤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받게 되는 것은 길, 행위의 열매에 따른 것입니다. 마음이나 깊은 생각은 조사는 받되 보응은 그에 따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생각에 따라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다면 그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그야말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떠오르는 것들 중에 취사선택하고 조정하고 정련한 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죠. 바로 그 과정이 통제입니다.
5,7절입니다. 사람을 신뢰하고 인간의 힘에 의지하며,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신뢰하고 여호와에게 확신을 두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에는 창조주에 대한 인식이 없으므로 당연히 신뢰도 없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가진 인간 통치자를 신뢰하여 추종하려 하고 있죠.
그의 마음 깊은 곳 즉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세뇌되어 무의식화된 것 그래서 그에 지배된 그의 길 즉 인생행로와 행동에 따라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되는 곳이 결정됩니다.
사람들은 국가주의나 자본주의, 민주주의 따위의 독성이데올로기에 따라 정치, 경제적인 삶을 살다가 죽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원칙 그와 관련된 위와 같은 진리를 알려주는 창조주에 신뢰를 두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천부적인 통제권을 사용하여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