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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by 법칙전달자

드디어


인간은 성적으로 즉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졌죠. 아무리 성적인 면으로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련한 사람일지라도 성적으로 전적으로 무차별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순수하게 인간으로만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의식적으로 성적인 면을 배려해 주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짐승에 대해, 짐승이 인간에 대해서는 무차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인간에게는 성적인 필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생명유지에 필수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성적 측면을 무시하고 살 수는 있습니다. 성기를 전적으로 소변보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한평생.


이성배우자가 필요하긴 한데 반려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반려동물이 일상적인 표현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담은 혼자였을 때 모든 동물들을 살피면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들 중에 반려자를 찾으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했죠.

반려자에 대한 필요를 절실하게 느낄 즈음에 창조주는 하와를 창조하여 그에게 인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말했다. “드디어 내 뼈 중의 뼈, 내 살 중의 살이 나타났구나.(창세 2:23)

드디어 반려자를 찾은 것이죠.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교육풍토는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완전히 상실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상적인 성과 결혼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죠.


온전한 인간남녀로 이루어진 반려관계를 오히려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성적 순결이라는 개념도 없어졌죠. 이혼은 일상사가 되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행복한 반려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경우를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라는 것이 겪는 공허함이 메꾸어지지 않으면 불안하죠. 어떤 불안감은 일종의 병증입니다. 그래서 반려동물로 그 공백을 메꾸는 것이죠.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만물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동식물도 그러하죠.

반려동물들은 애착이 가게 행동합니다. 경우에 따라 넋을 잃게 그렇게 귀엽게 행동하죠.


그리고 인간에게 전적으로 충실합니다. 인간남녀와 같이 배신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그가 어떤 사람이건 차별하지 않습니다. 조금의 편견도 나타내지 않죠. 이런 면에 있어서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신뢰성이 있습니다. 또한 불쾌를 느끼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습니다. 화를 내거나 경멸을 나타내거나 증오를 갖는 경우도 전혀 없죠.


이 문제투성이의 세상에서 어떤 인간 배우자가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요즘은 인간배우자에 대해 나의 평생의 반려자로 절대적인 신뢰를 갖는 경우는 오히려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런 것은 아니죠. 인간은 낙원을 상실한 것처럼 원래의 인간관계를 상실하였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남녀관계도 그렇죠.


짐승을 조상으로 모시고 숭배하는 그런 짐승이하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1:23

또한 짐승에게는 있을 수 없는 동성 간의 관계를 갖죠. (로마 1:26,27)


또한 그다음 구절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짐승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과 탐욕과 나쁜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속임수와 악의로 가득 차 있었으며, 수군거리고, 험담하고, 하느님을 미워하고, 불손하고, 거만하고, 자랑하고, 해로운 일들을 꾸미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이해력이 없고, 합의한 일을 지키지 않고, 비정하고, 무자비했습니다(28~31)


과거형으로 묘사되어 있죠. 비정상적인 불의의 상태가 없어진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이상적인 반려를 만난 것 같은 그런 일이 세상 전반의 모든 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또한 인간관계의 모든 면에서 드디어 이루어지는 일은 곧 현실이 됩니다.

서로에게 짐승, 반려 동물 이상의 존재가 되는 그런 때가 드디어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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