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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공식

by 법칙전달자

공식


수학에서 공식이라는 것은 절대성을 띕니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이 공식을 의심하여 나름대로 확인해 보고자 하면 큰 지연과 차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7*9=63 임을 믿지 못하여 일일이 7을 아홉 번 더해보고 나서 적용시킨다면 풀이가 지체될 분 아니라 더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면 결과가 틀릴 수 있죠. 외운 공식을 의심하는 일은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공식을 알고 정확히 적용시켜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죠.


세상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학 공식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고 확실한 공식들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죠.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수리’, ‘수’와 ‘이치’는 각각 범주에 해당됩니다. 만물의 운영되는 근 본원리의 한 측면인 것이죠. 수리에 관한 공식은 법칙에 해당됩니다. 논리나 삼리에도 그렇게 확립된 법칙성 공식, 공리 등이 있는 것이죠.


소위 보편이성에 의해 의문의 여지없이 확립된 것입니다.


도덕적인 면이나 영적인 면도 그렇습니다. 절대적으로 확립된 법칙에 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살인하지 말라”가 있다고 하죠. 그것이 확립된 도덕법칙이라면 인간은 그에 대해 사려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경우에 죽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의심하여 그 공식의 확립성을 수용하지 않으려 할 수 있죠. 그 생각이 발전하면 살인으로 연결되는 것이죠.

사실 인간에게 이런 식의 사고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매사에 틀린 답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다른 답을 내보려 하지만 시행착오의 연속일 뿐이죠.


중력을 인정 안 하여 낭떠러지에 뛰어내려보기도 하고 팔을 휘저어 하늘을 날아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말 데는가 하여 손을 불에 그것도 반복적으로 그렇게 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하여 인간이 처한 상황은 끔찍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무지의 극치인 것입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라, 너희는 모두 주 앞에서 평등하고 형제이다,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판단하지 말라 등등의 원칙들은 어려운 말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 6:6-9)

공식들을 외우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가까운데 적어두고 반복적으로 외울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수학이나 물리에도 많은 공식들이 있죠. 다 외우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그러나 문제를 수치와 관련하여 정확히 처리할 수 있게 되죠.


인생도 그렇습니다. 세상사도 그렇고요. 공식을 알고 그것을 적용하여 처리하면 필연적으로 형통하게 되죠.

그런데 그것을 무시합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죠. 그것을 ‘... 주의’와 같이 매우 고상하고 매우 수준 높은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또 해결한답시고 정책과 제도, 법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어 보지만, 통치자를 계속 바꾸어 보지만 무수히 그런 시도를 해왔지만 여지없이 실패해 왔습니다. 세상은 중병을 앓는 상황이 되었죠.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기만하겠지만 수천 년간 해오던 방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공식을 무시하고 다른 주먹구구식의 시도로 해결해 보려 하는.

인간들이 이런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은 절망입니다. 멸망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멸망도 법칙입니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 적용되는 유일한 공식이죠.


인간이 형통하고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식을 외워서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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