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함
엄한 말에는 징계를 위한 것이 있고 처벌을 위한 것이 있습니다. 경고가 있고 처벌에 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후자에는 돌이킬 여지가 없는 것이 있는데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죠.(히브리 10:31) 그런데 그런 두려움을 갖는 인간이라면 그런 저주를 받지도 않습니다.
예수는 그 당시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 집중적인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전체는 그들에 대한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위장된 범죄적인 탐욕에 대한 멸망의 선고가 들어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에서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고의로 무시해 왔음도 지적하였습니다.(23:23)
그런데 그들은 공식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고 대적하고 있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를 추종한다고 말하는 집단에 속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적들이 아니라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죠. 므나의 비유도 그렇고요.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열 처녀는 모두 예수의 신부였죠. 또 그 밖에도 예수를 추종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익을 남기지 못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 대한 저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아라. 거기서 그가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30)
열 처녀 중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 신부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 후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열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나는 당신들을 알지 못하오.’(마태 25:11,12)
예수의 이름으로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악귀들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전혀 알지 못하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물러가시오!’(마태 7:22,23)
중략하고 비약하여 결론을 전달한다면 이는 소위 기독교에 속한다는 모든 종파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이 직면할 결과는 위의 공식적인 적대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 하면 사랑, 자비, 용서 같은 덕목을 강조하는 분으로 그리고 그런 면에서 완전하면서도 최상의 본을 보이신 분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그분이 전한 것은 그런 부면이 강조된 복음 즉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력한 저주와 경고, 멸망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인류에게는 축복보다 저주, 멸망이 먼저입니다. 스스로 살 자격을 확고히 포기한 사람들의 대한 멸망이죠. 먼저 모든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고 그다음이 정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창조된 목적을 고의로 거스르고 확고하게 반역을 나타내어 거짓과 악에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