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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by 법칙전달자

달콤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죠.


단 음식이 몸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것은 혀에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귀에 달콤한 말들도 있죠. 눈에 달콤한 장면들도 있고요. 달콤한 철학 같은 것도 있고 거저 생기는 것 같은 달콤한 부정적인 돈도 있습니다. 비록 부도덕하기 짝이 없지만 달콤하고 짜릿한 성적 쾌감도 있습니다.

잠언 9:17입니다. “훔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음식이 맛있다.”


야고보 4:1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전쟁이 어디에서, 싸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들은 여기에서, 즉 여러분의 지체들 속에서 싸우고 있는 관능적인 쾌락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왜 죄를 그렇게 쉽게 짓는 것일까요? 그에는 쾌락이나 이득이 수반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음속에는 쾌락이나 이득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이 있죠. 갈망이 있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자신에 대한 통치권으로 정의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제어, 통제, 다스림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쾌락이라는 것이 아무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통제할 필요가 없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해를 끼치는 것이 왜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 9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영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화, 자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을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기둥에 못 박았습니다. (갈라디아 5:22~24)


신의 성품에 이르는 단계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릇된 욕망 때문에 생기는 세상의 부패를 피했으므로 그 약속들을 통해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지한 노력을 다해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지식에 자제를, 자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한 정성을, 경건한 정성에 형제 애정을, 형제 애정에 사랑을 더하십시오.(베후 1:4~7)


양쪽에 자제와 인내가 있죠. 정욕이나 그릇된 욕망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피하라든지 기둥에 못을 박아야 한다든지 하는 표현이 있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당한지는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쾌락을 누리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죠. 실제 조사를 보면 충동대로 자제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통해 해가 되지 않은 온전한 쾌락을 얻기는커녕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익하지 않은 달콤함을 역겹게 느끼는 도덕적 기능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장면이 유혹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토증이 나야 되는 것입니다.


듣고 보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인기를 끌려고, 판매부수나 구독자를 늘이려고 첨가하는 달콤하게 보이고 들리게 하는 요소들을 간파하고 배척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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