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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라고

by 법칙전달자

xx라고


인간들은 윤리뿐 아니라 법리와 논리에도 순응하지 않습니다. 도, 이치 혹은 도리, 조리라고 하는 것의 전반적인 체계를 무시하는 것이죠.


“왜 나한테 xx라고 하는 거야 이 xxx야.”라고 하는 것이죠. 내로남불이라는 말도 있고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는 말도 있죠.


보통 타인을 비난할 때는 적어도 그 비난하는 측면과 관련해서는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전제하에서라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강하게 뭔가를 비난할 때는 적어도 비난하는 그 면에 있어서는 비난받을 만한 면이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비난하는 것은 원칙에 벗어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로마 2:21~23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당신이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 하고 전파하는 당신 자신이 도둑질합니까? “간음하지 말라” 하고 말하는 당신 자신이 간음합니까? 우상을 혐오하는 당신 자신이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당신 자신이 율법을 어겨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립니까?


이런 부조리를 보이는 것이 극소수의 사람에게가 아니라 사실상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죠.


사실은 비난하는 바로 그 면에 있어서 자신이 더 심각한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 6:41,42입니다.

어째서 당신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까?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형제여, 내가 당신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위선자여!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십시오. 그러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어떻게 빼낼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외부로 향해 있어 자신은 잘 보지 못하죠. 그리고 이미 어렸을 때부터 굳어져 있는 악하고 이기적인 성향 때문에 본능적으로 공격적이 됩니다. 공격하는데 전인격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이죠.


인간이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내면의 결함뿐입니다. 외부의 악한 영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뿐이죠.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악과 거짓입니다.


동료를 공격한다면 그 사람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를 오염시키고 있는 악과 거짓을 물리쳐주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동료를 공격하는 것이라 할 수 없죠.


타인을 공격하는 언행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라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을 수 있죠.


그렇다면 그런 시각자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는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결코 판단받지 않을 것입니다. 더는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결코 정죄받지 않을 것입니다.(누가 6:37)


선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지만,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누가 6:45)


지금의 불완전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향이 악하지만 환경의 영향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동료에 대한 손가락질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자극적으로 구성지게 욕을 하느냐는 것이 인기의 관건이 됩니다.


거의 모든 인간이 그런 면으로 악하게 확고히 굳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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