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요산요수’라는 말이 있죠. 인자와 현자는 자연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실 자연은 구별 없이 좋아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산과 들, 강, 호수, 꽃과 나무들; 무엇을 좋아하고 배척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죠. 무조건적으로 즐겨도 무방하며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모든 것과 인간 자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상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모두 그러합니다.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영화를 보아도 모두 진정한 유익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해로운 것들도 많은 것이죠. 음식이라고 해서 모두가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의사가 정확히 진단하고 성공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그 누구나 마음 놓고 사귀고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기본적인 인성을 배양하지 못하거나 나쁜 의도를 가진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인 것에는 해로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오히려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없는 것들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코올에 취약한 사람은 모든 술을 거부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책이나 영상물, 게임, 교제, 강연, 심지어 음악 같은 것에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영적 병원균들로 감염된 것들이 대부분이죠.
그리하여 지금의 세상 사람들처럼 된 것입니다. 절대다수가 유사시에 욕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죠. 오히려 그 정도는 작은 일입니다.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그처럼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어떤 사회에서는 상당히 그리고 1,000년 이후의 세계는 자연을 사랑하듯 마음 놓고 모든 것을 좋아해도 되는 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