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성취
인간에게 필요, 욕구, 바람은 천부적인 것입니다. 본래적인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비본래적인 것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자연스러운 파생적인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간명합니다. 경쟁해야 하는 것,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은 그것을 바라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또 제로섬 성격의 있는 것이 그러합니다. 잘못된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도 그러하죠.
예를 들면 1등은 한 사람뿐이죠. 그러므로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악한 것이 됩니다. 여기서 악(bad)이란 꼭 도덕적 사악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당치 못하다는 의미이죠.
1등이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50점이라는 점수도 그 보다 못한 점수를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1등이고 99점이어도 그보다 점수가 좋은 사람들 그룹에서는 꼴찌가 되죠. 본질상 전혀 무의미하죠.
그러나 100점 맞는 것은 목표로 둘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점수와 상관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이죠. 검정고시 같은 것은 특정점수 이상이면 합격이지만 대부분의 시험은 등수 안에 들어야 합격인 점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패배해야 하는 승리, 누군가가 떨어지는 합격은 소망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전체 돈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은 누군가는 적게 가져야 함을 의미하죠.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하는 소망도 그릇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은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리고 본질상 종이조각이나 금속조각, 혹은 수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죠. 직접적으로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죠.
정치도 있어서는 안 되죠 그리고 공식적으로 권한을 갖는 정치인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 경쟁이란 한 표라도 많은 것이라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상대경쟁에 의한 것이죠. 지독하게 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이 되는 것을 소망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또한 봉사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직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필연적이고 본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서를 위해 그 직책은 한정되어 있는 것도 당연하죠. 그런 경우라면 자신이 자격을 갖추었을지라도 기꺼이 동료인간에게 양보할 수 있어야죠.
그리스도인 조직 내에서도 예를 들면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장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마땅히 소망하여야죠. 그러나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인 경우 ‘...감독자’로 임명이 됩니다. 장로들 중에서 임명이 되는 것이죠.
그 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라면 마땅히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가 정해져 있다면 동료인간과 경쟁하려 해서는 안 되며 임명마련에 겸손히 순응해야 하는 것이죠.
경쟁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서 마음껏 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건강, 평화와 행복, 사랑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생명입니다.
생명인 경우 자신이 계속 살면 타인이 불편해지는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지만 삶의 터전은 무한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부족한 것이 없는 풍부한 삶도 그렇습니다. 정상적이면 물자는 남아돌기 때문에 자신이 누리면 동료인간이 누리지 못한다는 경우는 없는 것이죠.
인간의 본래적인 필요나 욕구는 당연히 성취된다는 전제하에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원리를 아는 사람은 그 점에 있어 불안해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탐욕이나 정의하기에 따라 욕망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그릇된 것입니다. 야심이라는 것도요. 위에 언급된 기준에서 이탈한 것이고 불행과 고통, 피해, 파멸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