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되지 않아도
손발톱이나 머리카락은 매일 자라죠. 그러나 그러함을 늘 의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의식을 하지 않죠.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의식이 되어 손발톱이나 머리를 깎는 행동을 하죠.
인간의 의식력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전적으로 그것에 의존하여 생활을 하죠.
우주와 만물 전체 특히 영계를 포함한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의식하는 존재는 창조주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의식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가 아차 하면서 사고나 재앙을 당하는 일은 허다합니다.
또 의도적으로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게 획책을 하다가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죠.
그러나 우주 전체의 일은 그 99.9999.....99%를 의식 못한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습니다. 또 의식할 수도 없고요.
창조주는 필요한 경우 의식을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게 의도적으로 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온 기록의 집대성이 성서인 것이죠.
그것을 중요하게 의식을 하고 늘 대비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완전 무시하고 그 반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다수가 후자이죠.
인간의 의식기능은 우주에서 가장 신비한 것일 수 있고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방대한 의식 기능 중 어떤 것도 인간이 만든 것은 없죠.
다만 기능을 사용할 뿐이죠. 입술이나 혀, 손도 그러합니다. 머리카락하나 인간이 만든 것은 없죠. 그러나 인간들은 그러함을 인정하지 않죠.
입으로는 마구 욕을 하고 손으로는 마구 살인을 하죠. 그런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의식도 그러합니다. 그 의식을 사용한 결과가 말이며 글이고 행동이죠.
지극히 제한된 의식력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합니다. 지극히 주제넘고 교만하죠.
인간은 행복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무한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중에 의식적으로 의식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불행과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자신의 극히 제한되고 그나마 그릇된 의식 속에 노예처럼 갇혀 사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이죠.
틀릴 수밖에 없는 정치적, 종교적 견해라는 것을 가지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반드시 의식해야 할 필수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간과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죠.
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의식 있는 사람은 그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