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존중심

by 법칙전달자

존중심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밀접한 관련을 갖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예외가 되지 않으며 심리적 뇌과학적으로도 잘 확립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양자 역학과도 관련지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생각이 결국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죠.


존중심이란 대상의 객관적 가치에 따른 합당한 감정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비약하여 결론에 이르면 사람들은 말씀(성서)이나 창조주에 대한 존중심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으며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심도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들은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성서의 저자도 창조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꾸며낸 책 정도로 생각하죠, 특히 기독교가 앞장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극단적으로 존중심이 없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가장 말씀을 무시하죠. 오죽했으면 성서를 읽다가 발각되면 그것을 물에 축여 가슴에 매단 채 화형을 시켰겠습니까? 기독교 교리가 성서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사람이 쉽게 반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들의 모든 숭배방식과 삶의 행태들이 성서와 너무나 차이가 나죠. 역사에서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모든 면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말씀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의 결여도 그 면에 있어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악성은 잘 증명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을 죽일 때 고통 없이 죽도록 교수형이나 총살에 처하거나 참수를 하죠.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 온 곳이 기독교이죠. 온갖 고문 도구를 개발해 온 곳도요.


성서를 물에 축여 가슴에 붙인 채 태워 죽인 것도 고통을 그만큼 더 오래 겪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이러했기에 무신론이나 유물론,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런 철학에 근거하여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본질상 짐승과 다를 바 없으며 이기적으로 살다가 별 의미 없이 죽게 되는 존재니까요. 그러니 쉽게 욕을 하고 쉽게 죽이는 것이죠.


그러나 오늘날의 일부 계몽적인 연구가들은 우리는 “당신을 하느님으로 봅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듯이 보이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서에도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하기 때문에 일리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그 객관적 가치에 근접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이 그 객관적 가치에 맞게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에 국가주의, 상업금융제도, 과학만능주의, 제도권 종교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을 그 원인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들의 노예회가 되어 그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선은 정치판에서 그 언어들이 얼마나 존중심 없는 것인지는 매일매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고 있죠. 사실 서로를 쓰레기 취급하고 있죠. 대량학살은 권력 있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해왔죠.


경제세계에서는 인간을 돈으로 보죠. 인간을 평가하는 가치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없는 자는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 종교는 매우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들 역시 정치나 경제에 귀속되어 오히려 그 도구로 일조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매우 경이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과학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인간을 신적 존재인 것으로 위상을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론들이 있죠.


그러나 실제적으로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거나 성서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면 일종의 허황된 신비주의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실제적으로는 그 본연의 존영에 해당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하고 그 주장자들 자신들처럼 허무에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일상적인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시각을 돌리면 그들의 언행에서 원칙에 입각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존중심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에 그 객관적 가치를 알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죠. 그저 정치 경제에 그리고 오락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덜거리며 히히덕거리며 산다고 할 수 있는데 존중심 있는 생활방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외모나 재산, 배경 등에 따라 갖는 호감과 호의는 존중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존중심이란 우선은 순수하게 원칙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진정한 의미를 가진 방식으로 존중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서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주와 그분의 말씀에 대한 합당한 존중심 없이 사람을 존중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그에 따른 귀결로 마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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