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는 작가가 만듭니다. 사건, 사고도 그러하죠. 권선징악적인 결말도요.
그런 면에서 작가는 신과 같죠. 극 중 배우들의 연기는 자신의 의지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리얼하게 보이죠.
종영 후에도 녹화된 드라마들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죠. 극 중의 모든 것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죠.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력의 결합이죠. 어떻게 보면 경이 그 자체입니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졌죠.
극 중에는 작가는 전혀 등장하지 않죠. 그러나 모든 것이 작가의 정신의 반영입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하면 배후의 작가에 해당하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배우들을 꼭두각시로 느끼지 않고 현실에서 그 뜻을 자의로 삶을 펼쳐나가는 사람들로 느끼겠지만 사실 그들은 꼭두각시이죠.
세상사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력이나 인물들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는 배후의 작가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죠. 성서에는 세상을 그처럼 주제 하는 존재를 용으로 묘사합니다. 정치세력과 종교 세력이 그 지배하에 있죠. 용은 광명의 천사인 것처럼 가장하죠. 권선징악을 행하여 세상을 올바로 통치하는 것처럼 선전을 하죠. (고후 11:14,15)
멸망직전의 근래에 들어서 이익이 선이라고 공표하죠. 짐승들 즉 각 나라들은 자신의 국가의 권익을 위하는 것이 선이라는 개념을 확립하였습니다. 국가주의 사상이 지배적이 되어 영화나 드라마에 그런 사상들이 반영되어 있죠.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에는 그것을 정당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죠.
그걸 위해 전쟁을 벌이고 살인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다루고 있죠. 개인들이나 단체들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은 대개 그러한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독자나 인간의 심리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여 시청자가 재미있게 느끼도록 지능적으로 꾸미죠.
사람들은 싸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의 정치적인 싸움, 국가 간의 전쟁 등등. 개인 간의 주먹다툼도요. 아예 스포츠로 미화하여 드러내놓고 즐기죠. 올림픽의 여러 종목들도 그러한 투기로 이루어져 있죠.
머리로나 힘으로나 잘 싸운 사람들은 영웅적인 존재로 역사에 길이 남기도 합니다. 반복적으로 글이나 영상으로 다루어지죠.
인간의식에 대해 어떤 인간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진 존재는 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여 그러한 싸움들을 당연하게 아니 오히려 즐기게 만들어 놓았죠. 게임으로 영화로 드라마로도 즐기는 것입니다.
중교들도 극심하게 대립되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교적 이유로 나누어진 나라인 이슬람과 힌두국가가 핵전쟁 운운하며 으르렁거렸다고 하죠.
나라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면 종교들은 그것을 축복하고 신성시하죠. 1,2차 대전에 기독교에서 그렇게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죠. 종교도 한 통속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포츠, 드라마, 게임, 투표 등등으로 싸움을 즐기며 가담하죠. 전쟁을 지원하고 직접 참가하죠. ‘신앙의 전력화’라고 해서 종교도 최대한 동원되죠.
세상의 작가는 드라마의 작가보다 더 지능이 높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그에 의해 꾸며진 장면, 싸움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으며 그 장면이 지나갈 때 함께 소멸될 것입니다. (요한 1서 2:17, 고전 7:31)
영원히요. 제발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