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격차, 괴리를 줄여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에서 좌절과 절망, 허무와 공포가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괴리란 꿈이나 이상과 현실과의 격차를 의미하죠. 모든 면에서요.
우선은 자신의 외모가 이러저러하였으면 좋겠지만 고액의 성형을 하여도 잘 안 되죠. 포기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야죠.
이러저러한 재능과 능력을 갖기를 원하지만 혹은 자신의 인격이 어떠하였으면 하지만 안 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이러한 괴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습이나 자신이 처한, 경제를 비롯하여 매우 열악하고 불우하다고 느껴지는 환경적 현실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어떤 노숙자의 마음은 울분으로 가득 자 있을 수 있죠.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연명하는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죠.
어쩔 수 없기에 가능하면 부정적 감정으로 불우한 현실이 주는 고통을 심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해도 애처롭기 짝이 없는 것이 됩니다.
장애가 생기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실도 그렇습니다. 늘 울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야 도무지 소용이 없는 것이죠.
교도소에 감금되어 있거나 졸병으로 하는 군생활, 강제로 하는 탄광 등에서의 노역, 죽을 때까지 부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등등.
요양원이나 병상에서 누워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정치세력. 총을 든 병사들의 위협아래 사는 사람들......
사람들이 겪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극한 상황, 한계상황, 부조리라고 하며 실존주의 소설 같은 데서 묘사되기도 합니다.
비참, 끔찍, 공포, 절망, 허무......
왜 이래야 합니까? 희망은 없습니까? 인간으로서는 그렇습니다.
유일한 희망, 확실한 희망은 다음의 시편 145편에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손을 펴서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여호와는 넘어지는 자를 모두 붙들어 주시고 구부러진 자를 모두 일으켜 주십니다.
사람들의 바람은 창조주의 위와 같은 약속에 의하여 틀림없이 성취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내가 온종일 당신을 찬양하고 영원토록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여호와는 위대하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그 위대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을 사람들이 대대로 찬양하고
당신의 위력 있는 행동을 알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위엄의 찬란한 영화에 관해 말하고,
나는 당신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묵상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하신 외경스러운 일에 관해 말하고,
나는 당신의 위대함을 알릴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풍부한 선하심을 떠올리며 말을 쏟아 내고
당신의 의로움 때문에 기뻐 외칠 것입니다.
여호와는 동정심이 많고 자비로우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고 충성스러운 사랑이 크신 분.
여호와는 모두에게 선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에 그분의 자비가 나타나 있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고,
당신의 충성스러운 자들이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왕권의 영광을 선포하고 당신의 위력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에게 당신의 위력 있는 행동을 알리고 당신의 왕권의 찬란한 영화를 알릴 것입니다.
당신의 왕권은 영원한 왕권이며 당신의 통치는 대대로 이어집니다.
왕권 즉 예수에 의한 창조주의 통치가 여러 번 강조되어 있죠.
곧 하느님의 왕국에 의하여 그렇게 될 것이며 소원이 성취된 사람들에게서 위와 같은 찬양이 당연하게 우러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