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

by 법칙전달자

사변적


사람들은 사랑이나 자유를 비롯한 많은 주제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의견을 냅니다. 그것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요.


매우 진지하게 그렇게 할 것이고 그 사상들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사상들이 표현되지 않아도 바뀌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소재에 대해서는 논문을 내거나 학술지에 글을 올리기도 하지요. 그중 극소수는 실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요. 그런 것은 단지 ‘사변적이다’라고 평가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사변성만 있는 글들도 감동이나 영감, 사색의 소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에 관한 글을 아무리 써도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육체의 속박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죠. 결국 늙고 병들고 죽게 되죠.


그가 논하는 자유가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대한 글을 아무리 써도 그가 사랑인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글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인간들의 어떤 사상적 표현들이 단지 사변적이기만 하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해로워도 너무 해로운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그저 곱게 늙어서 죽기만 해도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됩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고욕(思考慾), 표현욕이 있습니다. 사고기능과 표현기능이 있죠. 그 기능들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는 모릅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에 관한 진리를 접해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죠.


자기 임의로 생각하고 표현하죠. 그러나 현실적이고 진정하고 영속적인 유익이 되는지는 모릅니다.


결론은 모든 것이 헛됩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서 그렇게 밝혀주고 있죠.


지극히 헛되다! 지극히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 1:2)


결론 부분입니다.


지극히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책을 많이 쓰는 것은 끝이 없고, 너무 책에 빠지면 몸이 지친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전도 12:8,12,13)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실제적인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언급된, 사람의 본문을 무시한다면요.


물론 위의 구절은 창조주의 사상이므로 그것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문입니다. 읽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요.


인간의 본문을 무시한 어떤 것도 헛됩니다. 단지 일시적이고 사변적일 뿐이죠. 그래도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영속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문제이죠.


그 존재 자체가 영구적으로 헛되게 즉 허(虛)가 되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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