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by 법칙전달자

특명


자신도 여러 번 죄를 지어 왔고 인류의 99.9%가 죄를 짓는다 해도 조금도 그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다수가 혹은 너무 쉽게 잘못을 범하는 것과 앞으로 죄를 짓는 것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과 비율적 수치는 상관이 없습니다.


원칙만이 상관이 있습니다. 죄 자체를 혐오스럽게 느끼는 변화가 실제로 있다면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중에는 누구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모죄라는 것이 가장 크죠. 그것을 꾸몄다는 것 자체로만 엄한 벌을 받습니다.


그런 성격의 죄가 있고 동료인간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끼치는 죄가 있죠.


성서에도 개인적 차원에서 용서할 성격이 아닌 그런 죄가 있다고 여러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완전했던 첫 인간이나 천사들도 반역죄 소위 역모의 성격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데 이는 완전성과는 상관없습니다.


의식 있는 존재에게는 절대성이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죠. 이는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이나 죽음이라는 부정적 성격의 개념이 애초부터 주어져 있었습니다. 선악과가 주어진 것은 인간의 자유가 절대적임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것을 따먹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면 선악과를 둘 필요가 없으며 따먹도록 설계되었다면 이는 창조의 모순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 먹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창조의 볼안전성이나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바로는 어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죄이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는 그런 성격의 죄를 지었지만 가인의 경우는 동료인간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죄를 저질렀죠. 그러나 가인에게 내려져 있는 시형선고는 그 죄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러하죠.


그 당시에는 살인죄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가인은 그 때문에 사형은 물론이고 다른 중벌이 선고되지도 않았습니다.


비약하여 본론으로 돌아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은 살다 보면 언젠가는 환경적 요인과 이기적이고 유전적 불완전함의 영향으로 동료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수이건 고의이건 인식부족이건 간에요. 그 성격이나 심각성에 따른 제지를 받게 되죠.


동료인간의 그러한 죄로 인해 신체나 재산이나 명예 등에 피해를 본 사람은 증오나 적대감, 원한, 복수심 등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경우를 불문하고 관련된 원칙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제한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그가 그런 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하죠.


죄인인 경우 끔찍스럽게 후회하고 뉘우친다 하더라도 자신이 끼친 피해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것은 감당이 안 되는 고통일 수가 있으며 그러한 고통은 살아있는 내내 그를 지배할 수 있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런 행동은 자신이 죽더라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뼈저리게 뉘우칠 수 있죠. 강한 죄책감은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쓰라리고 지속적인 고통입니다. 전 인생을 통해 지배될 수 있죠. 삶의 반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이 그런 식의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죠. 생각나지도 않게 하겠다고 여러 번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시 103:12, 32:1,2,5,51:2 이사야 38:17,1:18 미가 7:18,19)


창조주가 그러하다면 그분보다 결코 더 의롭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면이 있습니다. 비록 힘들더라도요. 입은 고통과 피해가 매우 통렬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러하겠죠.


그러므로 용서하라고 특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깨끗하고 완벽하게요. 여운이 남지 않게요. (마태 6:12, 18:22)


인간은 비록 약하고 불완전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영적인 상태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쉽죠. 죄의 행위는 역하고 혐오스러운 것인데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당

연하고 자연스럽고 쉬운 것입니다.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과 악에 대한 혐오감이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


곧 생존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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