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by 법칙전달자

자각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마음이 불편하거나 언짢거나 착잡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도 후회할 성급하거나 경솔한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각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죠.


인간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코 한 언행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수들—누가 자각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감추어진 죄로부터 결백하다고 선언하여 주십시오. 또 주제넘은 행동을 하지 않게 당신의 종을 붙들어 주시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온전해지고 많은 범법으로부터 결백을 유지할 것입니다.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당신 앞에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시 19:12~14


실제로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무의식적인 주제넘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잘못, 죄인데도 자각하지 못하죠.


40세 정도가 되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의 95%가 무의식리하고 하죠. 이미 인성 차원으로 굳어진 것이죠. 습관, 태도, 성격, 가치관 등등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죠.


민감하고 정결한 양심과 높은 도덕 수준을 유지하여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이 자각하기 힘든 그런 무의식적인 언행에서도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피치 못하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다윗은 주군이었거나 왕이었기에 그렇게 되기가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모순을 그 자신들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넘음이란 부당한 이탈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역겨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더럽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죠. 심장이건 허파이건 제 위치에 벗어나 널부러져 있다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 되죠. 머리가 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해 보시오.


주제넘음은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극히 주제넘은 언행을 일상적으로 해왔죠. 국가나 정부들은 공식적으로 대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도 그러한 많은 행위들을 해왔습니다. 자각을 못했을 뿐이었죠. 그러나 위 구절을 기록할 때는 그럴 가능성을 명백히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뻔뻔스럽게도(?) 결백하다고 선언해 달라고 요청을 하죠. 창조주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다윗을 사랑했을 텐데 그의, 창조나 창조주에 대한 인식이나 믿음이 비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는 무슨 죄를 짓던 용서만 구하면 자동적으로 용서야!”라고 결심하기라고 하신 것일까요?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당신 앞에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의미심장한 표현도 다윗의 그러한 인식과 믿음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비록 죄악 투성이의 삶을 살게 되겠지만 창조주와 창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찬양 그리고 그분의 우주적 통치권에 대한 옹호와 충절을 통해 말끔히 사면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해도 그러함이 결여되어있다면 그의 나름의 죄 없음은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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