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무엇을 듣든지 읽든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비평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죠. 나름의 주관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죠.
어떤 경서의 내용은 그걸 줄줄 외워서 과거시험을 보듯이 그대로 수용할 것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쓰인 제자백가의 시대엔 서로 간에 서로의 주장을 비평하기도 했죠. 같은 문파에 속해도 스승과 제자의 사상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같은 인간이 쓴 책이기에 권위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일단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면 나도 같은 인간인데 하면서 그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비이치적인 고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진리라는 것이 인정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 교리인 경우 강압적이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려 핍박받기도 하였죠. 외우도록 강요받는 기도문 같은 것들도 있죠.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는 외워 무조건 따르도록 한 강령이나 지침이 있죠. 비평이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비평이란 그 질이 떨어지면 혼란만 일으키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보다 결과가 바쁜 경우가 많습니다. 신빙성 있는 비평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역량이 현저히 뛰어난 사람의 사상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주제넘게 엉터리 비평을 하는 경우가 있죠.
정당한 비평의 여지가 조금만 있다 해도 그것은 온전한 진리가 되지 못하죠. 온전치 못한 진리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삶의 지침이라는 것이 없다면 삶은 어쩔 수 없이 고달프기 짝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그 자신도 구원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그 사상도 사색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 쓴 것 중에도 비평의 여지가 없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법칙을 밝혀낸 논문 같은 것들이죠. 구구단이나 인수분해 같은 것이 실린 것들이죠. 수학문제를 푸는 믿을 수 있는 지침이 되죠.
인생에도 인생문제를 해결하는 그와 같은 것이 있기를 바라고 찾는 사람이 있지만 그릇된 인도를 받을 뿐입니다.
요즘은 사서삼경을 그 지침으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도수가 십억을 넘는다고 하지만 성서를 그와 같은 지침으로 삼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교’라는데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여호와의 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회복시키고,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은 신뢰할 만하여 경험 없는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네.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명령들은 올바르므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깨끗하여 눈을 빛나게 한다네.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은 정결하여 영원히 서 있고, 여호와의 판결은 참되며 전적으로 의롭다네. 그것들은 금보다, 아니, 많은 정련된 금보다 더욱 바랄만하고 꿀보다, 벌집에 흐르는 꿀보다 더 달다네. 당신의 종이 그것들로 경고를 받았으니, 그것들을 지키는 데에는 큰 상이 있습니다. (시 19:7~11)
말씀은 인간이 그것을 비평적 시각으로 본다면 필연적이고 무조건 적으로 오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비평의 성격이 애초에 대상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이 옳으려면 그 자체가 본래적으로 확립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유나 원인으로 후발적으로 생긴 것은 보편이성에 의해 그 점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신학이나 철학이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 자체끼리의 비평은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옥신각신, 티격태격일 뿐입니다.
거짓과 거짓, 악과 악의 충돌일 뿐입니다. 이성 지체의 잘못된 사용일 뿐입니다. 살상용 무기 자체의 존재가 잘못인데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선악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어불성설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사용은 손의 폭력으로서의 사용과 같은 방법인 것입니다.
요즘은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 의롭다 불의하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나라들끼리 서로 싸우면서도 상대가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식의 표현은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 정치적 논리를 따질 뿐이죠. 힘의 역학관계가 주요할 뿐이죠.
평가는 또 다른 개념이지만 인간의 평가는 주관적일 따름이죠. 극단적으로 서로 다르기도 한 것입니다.
그 빈약한 아니 악하기까지 한 정신상태로 뭘 비평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까? 말씀에 대한 부정적 비평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인간의 손은 비평하는 데 사용할 수 있죠. 찌르고, 꼬집고, 비틀고, 때리고, 칼을 잡고 휘두르고, 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침을 놓고, 비뚜로 놓인 것을 바로 놓고, 회초리를 들고 건전한 징계를 하는 등등의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평가력도 돕기 위해 상태를 올바로 진단하고 돕는 방법을 정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죠. 조금도 공격용, 전투용이 아닙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비평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올바른 통찰력을 갖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통찰력을 가진 자에게 통찰력은 생명의 샘이다.(잠언 16:22)
통찰력 있는 자에게는 위쪽으로 나 있는 생명의 길이 있어서 아래쪽에 있는 무덤에서 벗어나게 된다.(잠언 15:24)
어리석은 비평은 무덤으로 인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