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가 안 되는
어떤 기기는 그 만든 제작자가 그 사용법을 잘 알지만 제작자가 아니더라도 그 원리나 사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알아야 그것을 다룰 수 있고 통제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그것으로 억지로 뭘 해보려다가 망가트리게 될 뿐이죠.
나라들은 돌아가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있죠. 기존 분쟁들에 더해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파괴와 살상을 주고받고 있죠. 미친 짓인데 통치자들이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으니 그런 일들이 당연하게 있을 수 있나 보다 혹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죠.
우선 전도서 9장 3절 후반절입니다.
인간들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고 사는 동안 마음이 미쳐 있다가 죽고 만다는 것이다!
사실 악하고 미친 짓입니다. 그리고 곧 죽겠죠. 통치자들은 대부분 6,7.80대이니까요.
인간들은 사랑도 할 줄 모르고 미움도 통제하지 못합니다.
9장 1절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사랑과 미움을 알지 못한다.
인간보다 사랑이 그리고 미움이 더 먼저 있었죠. 인간이 있은 다음에 생겼다면 그 과정을 보고 알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죠.
사실 인간은 사랑도 미움도 알지 못합니다. 안다면 사랑을 나타내고 미움을 통제하여 세상은 낙원이 되어 있겠죠.
또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을 뜻대로 이룰 수 있습니까? 그가 설령 의롭고 지혜로운 자라 할 지라도요. 지혜롭다고 간주되는 즉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오늘날 선출되어 통치자가 되지만 그들의 일이 그 추구하는 대로 형통하고 원하는 대로 됩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연속적으로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간에 내려온다거나 사법부를 들랑거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죠.
1절 전반절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결론을 내렸으니, 의로운 자도 지혜로운 자도 그들의 일도 참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사람의 추구하는 일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죠. 자신의 손안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존재도 그 추구하는 일도 원하는 대로 절대로 되지 않죠.
절대 지지를 받았던 히틀러도 처절히 실패하고 권총으로 자신의 존재를 중단시켰던 것입니다.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죠. 자신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절대로 할 수 없었죠.
2절과 3절 전반절입니다.
모두 같은 결말을 맞으니, 의로운 자나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깨끗한 자나 더러운 자나, 희생을 바치는 자나 희생을 바치지 않는 자나 똑같다. 선한 자나 죄인이나 똑같고, 맹세하는 자나 맹세하기를 조심하는 자나 똑같다. 해 아래서 일어나는 괴로운 일이 이것이니, 모든 이의 결말이 같으므로
인간이 아무리 상대적으로 의롭고 지혜로워도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절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죠. 악하고 어리석은 자와 같은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 구절을 기록한 솔로몬은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밧세바의 의로운 남편인 우리야를 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로워도 그러한 죽임을 당하는 것이죠. 사람이 비명횡사하는 경우에도 그가 숨은 죄가 있거나 어리석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죠. 어이없이 부조리하게 죽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미칠 지경이 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나는 왜 살아있는 것인가? 싶기도 한 것이죠.
사는 동안 마음이 미쳐 있다가 죽고 마는 것이죠.
이 구절들은 영감 받아 기록된 말씀이죠. 온전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인간의 삶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고 절망적인 것 같지만 물론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인간사를 인간에게 일임하였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개입하지 않죠. 일어나는 부조리는 창조를 거부하고 사랑이나 미움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창조주를 찾습니까? 그럴 경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12:13)
창조의 법칙을 알아 이에 순응하는 것이 유일하게 인간이 살고 행복하게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