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

by 법칙전달자

살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자신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경우가 있죠. 어떻게 보면 병적인 것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서 마음껏 죽입니다.


또 통치자들은 전쟁을 일으켜서 “나가서 마음껏 죽여!”라고 명령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신나게 죽이는 장면은 전쟁영상에 흔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는 상상은 쉽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저도 그런 충동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누군가는 제가 죽기를 바랄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세상자체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충동이 일기도 하고 그걸 실현시키는 영화도 있습니다.


물론 자제를 하여 그걸 실현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실제로 죽음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심지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나 죽이는 일, 그런 상상마저 있지 말아야 하는데요.


인간도 공식적으로 대규모 살인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에 의한 살육은 가장 클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그러하였고 곧 있을 멸망에도 그러할 것이죠. 천년통치의 끝에도 대규모적인 살육이 있을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어떤 진노는 살의를 동시에 일으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기도 합니다. “제발 목숨만...”하는 것이죠.


가장 증오해야 할 원수가 죽음이기도 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동생에게 살의를 느끼고 실제로 죽였지만 그의 후손인 라멕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흥분되어 그의 두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인 아다와 질라를 위해 이런 글을 지었다.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목소리를 들으시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내가 죽였소. 나를 친 젊은이를 죽였소. 카인을 죽이는 사람이 일곱 배로 보복을 당한다면, 라멕을 죽이는 사람은 일흔일곱 배로 보복을 당할 것이오.” (창세 4:23,24)


납득은 잘 안 되겠지만 라멕이 죽인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아들에 대해 살의를 느껴 아들을 죽이고 아내들에게 이와 같은 하소연을 했다는 것이죠. 아들은 어떤 이유애서 아버지를 때렸던 것이죠. 아버지는 당연히 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수 있죠. 오늘날에도 존비속 폭행이나 살인은 종종 발생하죠.


골육상쟁이라는 말도 있지만 살의를 느끼는 대상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죽음이 영원히 삼켜졌다”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맨 마지막 적인 죽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고전 15)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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