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감각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중에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시력에 있어서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차는 다른 감각에 있어서의 차이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청력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데 보청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죠. 시력은 안경이나 렌즈를 사용하여 보완을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시각과 청각은 고등 감각기관으로도 사용되죠. 촉각인 경우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을 때는 고등감각기관으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각은 맛을 분별하고 시각은 모양, 크기, 색 등을 분별합니다. 삶에서 그러한 것을 정확히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좋은 감각은 축복이 됩니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위나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죠. 이러한 분별을 담당하는 것을 지각이라고도 합니다. 일종의 감각이라는 시각으로 본 표현이죠.
사람 사이에 그 어떤 감각보다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9장 8절입니다.
지각력을 얻는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이다. 분별력을 소중히 여기는 이는 성공한다.
자신을 이기적으로가 아니라 원칙에 근거하여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진위나 선악을 정확히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11절입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화내기를 더디 하고, 잘못을 지나쳐 주는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다.
통찰력이란 정황을 정확히 보는,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지각력이 실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정확히 적용되려면 통찰력이 있어야죠.
인간에게 있는 결함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결함이 자신을 찔렀다고 해도 새삼스럽게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동료인간들과 접할 때 인격적 결함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개의치 않는 태도를 미리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진위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지각력이라고 한다면 그런 지각력이 있다면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거짓되고 악한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부득이하게 접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분리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추악함이 분명히 드러났다 해도 눈을 감아주는 것이 습관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공격당하고 피해를 입었다 해도 가능한 한 감수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래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감정적인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특별한 경우란 그것이 그렇게 한 상대를 위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이죠. 신념적 분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꾹 참고 눈을 감아주어야 하죠.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말도 있습니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대라는 말도 있습니다.(로마 12:21, 마태 5:39)
인간의 참된 아름다움인 것이죠.
진위 선악뿐 아니라 인격적 미추를 분별하는 것도 지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각력을 얻는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하여 그렇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