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착취
영적 사물은 창조주가 규정합니다. 인간에게는 애초에 그런 능력이나 자격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진리를 산출할 수 없습니다. 관련된 주장을 하는 종교나 철학이 제각각인 이유이며 모두가 거짓입니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이고 지혜가 무엇인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등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 도덕적 진리를요. 그리고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간명한 것입니다.
미가 6장 8절입니다.
사람아,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분이 네게 알려 주셨다.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단지 공의를 행하고 충성(헤세드: 충성스러운 사랑의 친절)을 소중히 여기며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인간의 역사는 착취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전략적으로 교묘하여 그것을 악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방법으로 통치자 차원에서 국가 차원에서 그렇게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과 정책과 제도를 통해 그리고 사법기관들과 종교를 사용해서 그렇게 해왔죠. 법조인과 종교의 수장들이 그렇게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죠. 이는 톨스토이도 소상히 밝힌 바가 있습니다.
재산뿐 아니라 생명을 착취해 왔죠. 공의도 충성도 겸허도 전혀 아니죠. 그들에게 도덕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가 6:11입니다.
네가 악한 저울을 가지고도, 자루에 속이는 돌 저울추를 가지고도 도덕적으로 깨끗할 수 있겠느냐?
선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그들은 이 구철에서 묘사하는 비유적인 착취의 도구들을 가지고 있죠. 여러 기관들과 제도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세제도가 원천적으로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열심히 노동을 해서 세금을 내고 누구는 그것으로 치부를 하고 군대 즉 폭력조직을 양성하여 세력을 강화시키죠.
군대와 경찰은 폭력조직이 아닌 것처럼, 인민들을 보호하는 조직인 것처럼, 법조인이나 종교인들은 의롭고 신성한 존재로 미화되어 있죠.
정책이나 제도는 경제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위장되어 있죠.
오늘날 사람들은 국가주의나 금융상업재도의 노예가 된 것으로 규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일한 것의 1/4 이상이 세금이나 이자 등으로 나간다는 것이죠.
지구에 사람이 둘밖에 없다고 할 때 한 사람은 노동을 하여 생산을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의 일부를 빼앗아 편하게 산다고 하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노예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맹수의 공격을 받았을 때 네가 그것과 싸워서 날 지켜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은 노예에게나 가능한 것이죠.
두 사람이 있을 때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원칙은 다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세상의 제도를 노예제도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죠. 동료인간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너는 노동자도 되고 군인도 되어 날 억여 주고 보호해 줘.”라고 하는 것이나 본질상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통치자는 노예주이고 정치인, 법조인, 종교인들은 그들과 한통속이죠.
물론 이 노예제도는 그것에 속한 모든 것과 함께 철저히 소멸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악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