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카메라
인간의 머리카락 하나에도 천문학적 수의 전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특정 하나의 전자는 물론 그 머리카락 안에 있을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카락을 구성하고 있는 전자가 태양의 중심에 있을 수학적 확률도 0은 아니라는 것이 양자역학의 설명이죠. 우주 어디에도 그것이 존재할 확률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양자 카메라로 어떤 사람을 찍는다면 육안으로 보기에 그 사람의 위치라고 생각하는 그곳이 제일 선명하게 나오지만 전 우주로 희미하게 번진 모습이 촬영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 몸을 이루고 있는 입자가 우주 어디에든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 사람 몸을 이루고 있는 입자는 그 위치를 측정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데 몸 바깥 어디에든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너무 황당하고 도무지 납득이 안가지만 이해한다고 하면 이해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이라 하니 그 결과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주장이 참이라 해도 일견 현실 생활에 대한 실용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즉 몰라도 전혀 불편할 일이 없는 지식인 것이죠.
그런데 이는 양자의 위치가 어디에든 있을 수 있고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고 확률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불확정성원리에 입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양자의 본질은 알 수 없습니다. 질량이라고 할 때의 그 양자를 써서 양자이지만 사실 인간은 질량의 본질도 잘 모릅니다. 힉스장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 이론도 있는데요. 물질과 비물질의 구별이 되지 않는 세계이죠. 그런데 양자요동이 지배하는 이 세계가 인간의 의식세계와 일치점이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도 매우 현란한 세계이고 꿈도 그에 포함되고 걷잡을 수 없이 황당무계한 것이 꿈이기도 하죠.
의식은 우발적이고 맹목적이고 비연속적이라고 하는데 양자의 세계가 바로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해괴망측한 미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이 인간의 의식이죠. 도무지 예측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죠. 양자 세계의 요동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고 성서에도 그점이 명시되어 있죠.
우리 인간은 생명 있는 존재에 반영되어 있는 그 어머어마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경이로움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미 한 마리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발명품에도 비견할 수 없는 지성이 반영되는 설계가 내포되어 있죠. 거시세계의 모든 대상들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는 데 그 바탕이 바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양자적 특성을 바탕으로 그렇게 한 것이죠. 바로 그 불안정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현재까지 발견된 소립자는 300여종이라고 하고 대부분 찰나의 시간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재료로 만물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미시세계는 극도로 불안정해도 거시사물은 경탄할 정도의 안정성을 지니고 있죠. 오늘의 개미는 내일도 개미인 것입니다. 그것이 내일 물이 되거나 박쥐로 되는 일이 결코 없는 절대적으로 안정된 세계에 인간은 살고 있죠. 인간이 바늘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바늘인 것이죠. 그것이 모기가 되거나 거북으로 변신하는 일은 결코 없는 세계에 인간은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절대 불안정한 것을 재료로 절대 안정한 것이 만들어졌죠.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알아내고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런 재료로 이처럼 만들어진 것은 인간의 영원히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입니다. 창조에 대한 인식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점을 인식해야 사람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