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까지
인간은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자기계발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헛된 희망이며 속임수입니다.
베드로는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어부였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들다 동일한 정도로 두드러지게 발전과 변화,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인간으로서는 불가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변화상을 살펴봅니다.
사유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 중 인간이 규명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진화론자는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물이 지성의 개입이 전혀 없이 우연히 맹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진화론이라는 것 자체도 생물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설명하기 위한 의도 즉 목적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자가당착적인 것이죠.
베전 1:9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목표인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목표를 구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부가 개인의 사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3,4,5절입니다.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셔서 살아 있는 희망을 갖게 하시고,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예비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인간이 단지 발전이나 성장, 자기계발 정도가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로 태어나는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선언되어 있습니다.(요한 3:3,5) 결코 없어지지 않을, 하늘에서 예비된 것이라고 하고 있죠.
또 구원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25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고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좋은 소식입니다.“라고 하고 있죠.
2장 9절에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 겸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는 베드로와 같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의 연합체에 대한 묘사인데 그들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고 나라이며 하느님의 특별한 소유이며 모두가 왕 겸 제사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목표인 구원의 구체적인 구현의 한 일면인 것이죠. 물론 영생은 기본입니다. 천사도 갖지 못한 불멸성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모든 성서의 내용과 온전히 일치한 것이죠. 성서는 약 40명이 1,600년간을 통해 기록한 66권이지만 하나의 책으로 묶일 만큼 완전한 일관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시대에 같은 교육을 받은 같은 당파에 속한 사람들도 10인 10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온전한 일치는 불가능하죠. 같은 기독교라 할지라도 종파가 수만이라고 하는데 생각의 극심한 분열을 의미합니다.
성서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의도적으로 엮어진 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베드로 자신이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께 받아서 쓴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후 1:20,21)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위선이 없는 형제 애정을 갖게 되었으니, 서로 마음으로부터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 태어났습니다.(베전 1:22,23)
진리에 순종하는 것과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연관 짓고 있죠. 말씀을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몇몇 단편만을 맛보기로 살펴본 것이지만 어떤 인간이 소위 자기계발에 최대한 성공하였다고 해서 의식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내용은 오늘의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입니다. 생생하게 이루어진 것이고요.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이와 같은 강조화법은 성서의 일반적인 표현법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썩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변화를 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입니다.
사람은 이렇게까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