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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아니다

해석하려면 성서를 볼 필요가 없다.

by 법칙전달자

신화가 아니다


해석하려면 성서를 볼 필요가 없다.


‘신화’나 ‘전설’은 인간이 상상으로 꾸며낸,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서 특히 창세기를 그렇게 간주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문제에 대한 답은 인간 이성으로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 법칙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성서가 신화라면 영적인 문제의 답은 인간이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물론 부조리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서를 진리를 알려주는 기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결정적인 원인은 기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성서에 없는 사상을 교리로 만들고 성서를 보면 쉽게 그점이 확인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성서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쉽게 성서를 볼 수 있죠. 그래서 그런 반발을 줄이기 위해 성서해석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서를 해석하려면 성서를 볼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성서에 기록된 창조주의 언명의 의미를 변화시켜 그들의 교리가 비성서적인 아닌 것처럼 인상을 주려하는 것이죠. 심지어 성서에 근거히고 성서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교리의 90프로는 비성서적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방식이나 의식은 대부분 성서에 없는 것들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것이 성서와 너무나 다른데 성서의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들은 기독교의 선전에 의해 성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어 더욱더 성서를 불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성서의 간명한 언명은 해석이 필요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을 최종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성서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되어 있는데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변화시켜 달라지게 된 내용을 진리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극명한 모순이죠.


하느님은 오직 하나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영혼은 죽는다. 죽음 자체가 없어지며 사람들은 땅에서 영원히 산다. 이와 같은 말들은 해석이 필요한 어려운 말이 아니지요.


하느님은 셋이며 하나다(삼위일체). 예수는 아들하느님이다. 영혼은 불멸이다. 인간은 죽은 후에 천당이나 지옥 가서 거기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거나 고통을 겪는다. 와 같은 표현이나 사상은 성서에 전혀 없지만 기독교의 주요교리이죠.


또한 미사의 온갖 절차나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것은 성서에 전혀 근거가 없죠. 그들이 역사상 자행해온 종교재판이나 종교전쟁, 세속전쟁에의 참여 역시 전혀 비성서적입니다.


기독교의 거의 모든 면이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죠. 성서 자체에서는 기록된 것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고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죠. 그런데 기독교는 거의 모든 것이 성서에 없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서의 핵심 가르침인 하느님의 왕국에 의한 낙원의 완성은 전혀 없습니다. 창조와 관련된 주요법칙들이 없죠.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법을 주었고 인간은 그 법에 순종하면서 땅을 낙원으로 개척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낙원에서의 영원한 삶이 창조의 목적이죠. 자유의 법칙, 유전법칙 등 많은 법칙을 두었고 그 법으로 만물이 운행되죠. 첫 인간 부부는 고의로 법을 어겼고 그 후손들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땅을 만든 창조주의 목적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가상응의 법칙에 따라 예수가 대속물로 주어졌고 이를 받아들이는 개개인은 다시 영생에 대한 전망이 주어지죠. 그리고 예수가 통치자인 왕국의 천년 간의 통치를 통해 인간은 완전성으로, 땅은 낙원으로 회복된다는 것이 성서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창조주의 말씀이므로 전혀 비과학적이지 않습니다. 둥근 지구가 공중에 떠 있다든지 물의 순환에 대한 정확한 묘사 등은 수천년 전의 사람이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성서의 교훈의 실용성은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평가받는 정도이죠.


그러므로 인간의 성서에 대한 합당한 태도는 먼저 그 안에 어떤 사상이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과 과연 그것이 진리인지를 진지하게 조사하는 것입니다. 선입관으로 부정적인 판단을 한다든지 해석하려하는 것은 합당한 유익을 얻는 방법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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