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과 속박

by 법칙전달자

초월과 속박


앎의 목적은 그것에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되는 것입니다. 지식은 단지 사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관념에 머무르는 것은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속박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 경우에 속박이 자유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종종 자기당착적, 자기모순적, 자기파괴적이 됩니다. 앎을 갖게 되었다면 스스로 이에 속박됨으로써 그러한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초월적인 앎은 앎이 아닙니다. 초월적인 앎이란 것은 없습니다.


기도가 무엇이라는 앎은 있지만 실제 기도하지 않으면 그 앎은 소용이 없습니다. 행위를 지향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닙니다.


관련된 문구를 줄줄 외우고 있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이지요.


행위가 없는 사람은 그에 대한 앎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이죠.

강연을 듣거나 글을 보기는 하는데 그것이 적용되지는 않고 단지 사색의 소재만 될 뿐인 것은 시간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처음 적용하는 것, 그것은 의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큰 에너지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스스로 그것에 속박되고 그 멍에를 메는 것이지만 말씀에도 멍에가 아니라고 하지 않고 가벼운 멍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 11:29,30)


짐스러운 것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요한 1서 5:3)


안다고 하면서 행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로 규정하죠.(요한 1서 2:4)


듣거나 보아서 알게 된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야고보 1:22)


앎으로써, 초월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는 것이기 하지만 스스로 그 앎의 종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베전 2:16)


만일 알았다고 생각하고 적용하려 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면 그 앎이라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에 실용적인 적용이 어렵게 하는 모호성이 있는 것이죠. 진리 즉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이 글은 원래 기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창조주에 대한 사적인 기도는 필수입니다. 그 유익의 필수성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기도의 결여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이죠.


우선 기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은 다음에 그것을 행하는 속박에 스스로 매일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의 일상적이고 필수적이 되게 해야합니다.(데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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