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전기(傳記)라기는 것이 있고 자서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명정치인들도 나름의 책을 써 출판 기념회를 하기도 하죠.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사와 야사들도 많죠. 주요 권장도서에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일대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의 상상일 뿐일 수 있습니다. 죽은 다음 아무리 많은 후손들이 그 책을 읽고 그를 기린다 해도 죽은 자에게는 조금의 소용도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긴다는 것은 살아있을 때의 착오적인 상상일 뿐인 것이죠.
특정 개인에게 특별하게 주의를 돌리는 것에는 불합하고 부조리한 가치관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상이나 업적을 통해서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한정된 수명을 가진 인간들에게 각별하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수상록’처럼 도서명에 개인의 이름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주목받고 싶어 한다는 의미이죠. 스피노자인 경우 자신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상이 보편적 진리라면 특정 개인과 연관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나름의 설이라면 즉 정당한 비평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면 거짓이 되어 오히려 그 이름에 불명예를 돌리는 것이 되죠.
물론 지금의 뒤틀린 세계는 그 모든 틀린 것들을 다양성이라고 미화하면서 서로 다른 주장들을 마치 그것이 반드시 알아야 할 유익한 것이나 되듯이 소개를 하고 있죠. 그 다른 것들 즉 틀린 것들을 두루 섭렵하여 소양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을 혼란과 혼동에 빠트린 극명한 모순이죠.
66권의 성서 중 인명으로 된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기나 목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특정 개인의 사상이나 행적에 주목을 받고자 하는 뜻이 전혀 없죠. 그것을 전시하거나 기리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예언자로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있고 각각 그 이름으로 된 책들이 있습니다. 성서의 정경으로 포함되어 있죠. 그리고 두드러지게 활약한 엘리야, 엘리사 등도 있습니다.
그들의 행적이나 활약상에는 본받을 만한 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기록한 목적도 특정 개인에 대한 전시나 과시가 전혀 아닙니다. 기록한 것이 사상적인 것이면 특정 개인의 사상이라는 것이 전혀 아닌 것이죠.
이 점은 그들의 이름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Elijah) [나의 하느님은 여호와], 엘리사(Elisha)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이사야(Isaiah) [여호와의 구원], 예레미야(Jeremiah) [‘여호와께서 높이시다], 다니엘(Daniel) [나의 재판관은 하느님], 에스겔(Ezekiel) [하느님이 강하게 해 주신다]
그들의 활동이나 기록 자체가 창조주를 알리기 위함이죠. 전적으로 그러합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전달받아 기록한 것일 뿐입니다. 그 모든 예언자들의 사상은 그런 면으로 온전히 일치합니다. 개인의 것이란 있을 수 없죠.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주목받고자 여러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하게 된 인간들은 조금도 그럴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영웅들로 알려진 사람들도 사실은 살인자들이며 편벽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행적이건 사상이건 길이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영광과 관련된 본성이 있지만 그릇된 시도를 해왔습니다. 창조주가 영광스럽게 해야 참 영광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만이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