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것이
종교란 것이 취약하고 허무한 삶의 위안이나 도피를 얻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는 등 그 발생 원인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있지만 오늘날의 대세는 무종교, 무신론입니다. 계몽적인 지식이라는 소위 과학의 영향이 크죠.
종교에 적을 두고 있어도 예전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과는 그 질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필요에 의해 그런 것으로 가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쉽게 종교를 떠나고 있으며 그런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오히려 정치세력화 되고 있다는 일면도 있다고 합니다.
종교나 철학은 다른 면으로 악한 의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딤전 6:4,5)
철학은 의심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깊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죠.
종교는 대체로 절대자의 존재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죠. 실제적으로는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지만요.
그러나 철학은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절대적인 태도로 외치는 식이죠. 완고한 회의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과학도 그 회의적인 태도 자체는 회의하지 말고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죠.
어이없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데 그들 스스로는 기초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상태에서 완전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죠. 종교도 고대의 그런 철학에서 유래했죠. 성서는 속이기 위한 겉치레로 가지고 있는 것이죠.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가 완전무에서 어느 시점에 마술처럼 ‘짠!’하고 갑자기 생겨났다는 것이죠.
그러나 헛소리를 그처럼 진지하게 해 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헛소릴 구성지게 하는 호킹이라는 과학자도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죠.
종교인, 철학자, 과학자 공히 이성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면에서 지성이라는 것도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이외의 지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 만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니까요. 지능이 높다는 것 정도는 인정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만물은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법칙들에 의해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고 확고하게 결정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자가당착의 태도로 삶을 살죠.
유신론자아며 창조론자라고 표방하는 기독교를 위시한 종교들도 그러합니다. 우스꽝스럽다는 면에서는 진화론자나 무신론자들과 쌍벽을 이루죠.
자신을 종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유신론자라고 하는 것 자체가 기막힐 정도로 어이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인데 본인들은 그러함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스스로 터무니없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좀비처럼 살고 있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이런 점들은 성서에서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력이나 운동의 법칙처럼 논리적이고 공식적으로 확립된 진리입니다.
거짓을 폭로하고 진리를 전한다는 사명감에서 언급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