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목적
양자역학은 그것을 이해한다고 하면 이해 못 하는 것이라고 하죠.
광속불변도 유령현상(양자 얽힘)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빛의 속도는 심지어 빛의 속도로 빛을 쫓아가도 그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는 것입니다. 빛은 왜, 어떻게 그런 성질을 갖게 된 것입니까? 플랑크 상수도, 줄기세포도, 힉스입자도, 중력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존재하게 된 것은 너무도 깊고 멀리 있으니,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전도 7:24)
사실 본다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법칙이나 원리, 성질이 있고 그것으로 작용하는 현상이 있는데 그 현상은 보인다는 것이죠.
본다는 것을 그보다 더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설명하는 말이 더 복잡하고 함축된 언어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어로 ‘see’는 ‘이해하다’는 의미로도 쓰이죠. ‘이해’의 정의에는 “요소들의 관계를 봄”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 말 자체가 알기 어렵습니다.
현상들은 보이지만 그 원인인 원리는 너무 깊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기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 곧 ‘이해’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중력을 초월하는 우주선을 만드는 것도 시간여행기기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라고 합니다. 공간이동도요. 창조신호를 볼 수만 있다면요.
인간이 보게 된 것은 최대한 활용하고 있죠. 전기, 전자기 등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전제품, 전자기기가 만들어진 것이죠.
중력에 대해서는 근래에 겨우 중력파를 희미하게나마 발견하였다는 것인데 그 정도로는 초중력기기를 만들 수는 없다고 합니다. 공기는 보아서 양력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비행기 정도는 만들었지만요.
빛은 이르지 못하여 볼 수 없는 인접한 다중우주도 중력자만은 접속이 가능하여 볼 수 있다고 하죠.
줄기세포를 정확하게 본다면 인간이 병에 걸리지도 늙지도 않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요원하다고 합니다.
비유적으로 땅속 너무 깊이 있거나 너무 멀리 있어서 그것이 아무리 값진 보물과 같은 것이라고 찾을 수 없는 것이죠.
인간은 과거도 미래도 볼 수 없죠. 과거는 너무 깊이 파묻혀 있는 것, 미래는 너무 멀리 있는 것과 같죠.
이해하려면 보아야 하는데 볼 수 없는 것이죠.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숨어있는 6차원도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중력자도 볼 수 없다고 하죠.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전도서 3:11ㄴ)
지금까지 많은 것을 찾아내기는 했죠.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발견하고 그 성능을 계속 향상해서요. 그러나 아직 그림의 떡입니다. 일부 피상적인 것을 희미하게 보기는 하였지만 손을 쓸 수는 없죠.
그러나 깊이 멀리 숨겨져 있는 것들은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습니다. 그렇게 멀리 가기에는 인간의 수명도 너무 짧습니다. 그렇게 깊이 들어가기에는 인간의 기술력도 매우 원시적이죠.
인간이 명령받은 것은 단지 지구의 개척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원히 살면서 전 우주를 개척해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공동창조자가 되어서요.
지금은 그렇기는커녕 서로를 파괴하기에 급급하죠. 빨리 그런 존재들이 없어져야 지구의 개척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