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과 현실
여기서 배반이란 이율배반을 의미합니다.
평면좌표에서 직각쌍곡선은 좌표축과 만날 수 있습니까? 무한히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그래도 만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언어유희와 같습니다. 끝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될 수 없으니까요.
물질을 무한히 잘게 자른다는 것과 공간의 끝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런 것이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긍부정의 대답이 가부를 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들 다 맞다 해도 별 의미가 없죠.
그런 것은 어떻든 현실 생활과 무관할 수 있고 순수사변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죠.
현실에서 구체적 영향이 있으려면 구체적인 수치가 부여된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인간의 어떤 이상적인 혹은 이론적인 사변과는 달리 관측 가능한 현실은 그렇게 되어있죠. 물질이나 시공은 무한이 나누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수직선상의 그러한 수리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직선상의 수치는 무한하죠. 무리수를 포한한 모든 실수가 다 담겨있죠.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공간상이나 시간적으로 그 모든 수치에 해당하는 지점이나 시점이 존재하여야 하죠. 그리고 당연히 시공은 연속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자연스럽긴 합니다. 물질도요.
그런데 실제 그렇다면 무한이라는 모순에 직면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무한히 잘게 쪼개지는 것이라면 아무리 작은 물질도 무한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온도에 따른 그 방출에너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반드시 어떤 수의 배수로만 방출되고 그 사이수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소위 플랑크 상수라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았고 아인슈타인도 이 상수를 재빠르게 이용하여 광전효과를 발표하여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시간, 공간, 질량, 에너지 같은 것들이 어떤 단위(플랑크상수)의 배수로만 존재하고 비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점에서 없어졌다가 다른 지점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수치에 해당하는 시간과 공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현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죠. 이해를 한다고 하는 것은 이해를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지극히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미시세계와 그 법칙을 바탕으로 절대적 안정성을 지닌 거시세계가 운영이 된다는 것이죠.
이율이 공존하는 것이죠.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면도 있습니다. 현실이 어떤, 이상처럼 보이는 사변과 일치하다면, 만물의 원리가 그렇게 쉽게 찾아진다면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전도서 3:11ㄴ)”라는 말씀이 틀린 것이니까요.
보아야 찾아내는 것인데 보이지 않으니까요. 육안으로는요.
또 영원한 본질은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고후 4:18)
현실은 바로 그 본질이죠. 인간이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그래서 그 현실에서 영원히 소멸하게 되죠.
현실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 즉 머릿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의 실제 사실을 의미하죠. 인간이 사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인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현실은 현상적 지배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법칙과 힘입니다.
소위 물자체, 현실은 창조주만이 아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배반하는 것이 바로 그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