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인간의 행복에는 비물질적이고 비감각적인 면의 비중이 실제로 큰데 유물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착오나 억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맛에는 쓰고 달고 짜고 신 화학적인 맛이 있고 부드러운지 바삭바삭한지 물컹물컹한지 등등의 물리적인 맛이 있고 누구와 함께 먹느냐 하는 사회적인 맛이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종류의 맛(심리적인 맛, 감칠맛 등)을 말하는 사람도 있어 적어도 4종은 넘게 되죠.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모여 값싼 음식이라도 희희낙락하면서 맛있게 먹는 경우가 있고 재벌들의 모임에서 요정의 값비싼 음식이라도 근심에 가득 찬 얼굴로 한두 번 찝쩍대다 모래알 심는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젓가락을 놓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어떤 맛들은 물리적으로 감지나 확인이 안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경치나 음악 감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허상이나 착각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섭리일 수 있습니다. 인간 의식이 원래가 그렇게 창조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주의라는 것이 있고 낭만주의라는 것이 있죠.
의사는 인간의 몸의 어떤 부위를 다루던 사실적으로만 다루어야죠. 특히 부인과 의사라면, 그러나 연인(배우자) 사이인 경우 정신을 잃을 정도의 강한 쾌감을 얻는 애무의 대상이 될 수 있죠. 몸의 모든 부위가요.
사실주의란 누군가 자신의 뺨을 때렸다 해도 “강도 3의 충격이 내 뺨에 가해졌구나.” 정도로만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감정적으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것을 의미하죠. 누군가 자신에게 ‘개...’라고 욕을 한 경우에도 “저 사람이 "ㄱ, ㅐ, ㅅ, ㅐ, ㄲ, ㅣ"라는 발음을 했구나, 그런 소리를 냈구나.”라고만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렇게 되어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전쟁영화에 보면 옆에 전우가 쓰러져 죽어도 나무투막이 쓰러진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와 시체를 붙잡고 대성통곡하는 두 가지가 다 나오죠.
인간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의 의식 상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름의 사고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냉철한 정신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감정의 악역향을 받지 않게요.
인간의 어떤 사변이라는 것이 심리적 실용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의 행복의 결핍입니다.
사람들이 물질이나 감각적인 쾌락을 좇다 보니 행복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무표정하게 자신의 아래를 내주는 몸 파는 여자들인 경우 그 행위는 행복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성적 호기심에 못 이겨 사창가를 찾은 대학생의 85%가 단지 모멸감, 치욕스러움을 느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의 이복누이 다말에게 욕정을 품고 있다가 기회를 잡아 강간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 대단한 환상적인 쾌락을 맛볼 것으로 기대했나 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아 그 실망감은 큰 미움으로 되어 그녀를 쫓아버렸는데 결국은 그의 친오빠 압살롬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묻지 마 관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상대와 하룻밤 불륜을 나눈 친구에게 어땠어? 라고 물어보았는데 좀 언짢은 표정으로 “그저 그래.”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죠.
원래는 부부간의 성관계라는 것이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날이 갈수록 그 즐거움이 크고 강하고 깊어지게 되어 있는 것인데 현실적인 상황은 그 반대이죠. 초기의 짧은 밀월이 지나면 다른 이성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사이의 본연의 애정이 없다면 본연의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도착(倒錯)의 도를 더해가는 것의 결과는 허탈감일 뿐인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서 2:1,2입니다.
또 내가 마음속으로 ‘자, 이제 쾌락을 맛보고 좋은 결과가 있는지 알아보리라’ 했으나, 그것도 헛되었다. 내가 웃음을 두고 “미친 짓!”이라 했고, 쾌락을 두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24입니다.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며 자기가 수고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도 참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내가 깨달았다.
현재도 누릴 수 있는 건전한 즐거움들이 있습니다. 성실이 일하여 경제적인 책임을 다 하는 가운데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행복은 배가 되고 찬양하면 또 그렇게 되죠, 누리는 즐거움에 대해서요. 인간은 현재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런 행복들이 있습니다.
수고의 결과로 얻게 된 맛있고 영양 많고 보기에도 아름다움 식품들을 사랑하는 가족과 혹은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거나 감상하면서 창조주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지극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맛에는 화학적, 물리적 맛이 있고 사회적, 심리적(감사와 찬양)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즐거움에도 그러합니다.
신뢰하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성적 행복을 나눌 때도 그것을 마련하시고 또 보시고 계실 창조주께 감사하고 그러한 즐거움을 마련한 것에 대한 찬양의 감정이 더해진다면 그 성적 쾌감의 강도는 형언할 수 없이 더 커지게 됩니다.
숲을 산책할 때나 음악을 감상할 때, 사랑하는 지인들과 교제를 나눌 때도 그러합니다. 심지어 혼자 한 잔 할 때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맛이라는 것 자체를 창조한 근원에 대해서 갖는 인식은 모든 행복을 더 크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