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육체의 약함

by 법칙전달자

두 가지 육체의 약함


인간이 겸허할 필요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육체의 약함과 한계입니다.


어떤 면으로 인간의 육체는 아주 약하여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목의 경동맥을 살짝만 잘라도 죽죠. 상처도 쉽게 납니다.


다른 어떤 동물보다 피부가 약하죠.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도다.”하고 예수께서 말씀한 바가 있죠.(마태 26:41) 몸 상태 때문에 계획한 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성서에서 몸이라고 할 때는 신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욕망이나 감정 같은 것도 몸이라고 합니다. 쉽게 화를 내거나 질투를 하거나 성적인 욕망에 쉽게 굴복하거나 돈을 탐하거나 욕을 하거나 술에 취하는 것들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육체는 약할 뿐 아니라 악하기도 합니다. (갈라디아 5:19~22)


베드로도 두려움이라는 감정 즉 몸의 약함에 굴복하여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죠.


인간들의 행동 중에는 육체의 약함이나 악함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의 3요소를 생각, 감정, 행동이라고도 하는데 몸은 무의식의 실체라고 하는 이유가 몸의 행동이 그러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고상해도 몸은 결코 쉽게 그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습니다.


나는 나에게서 이런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옳은 것을 하기 원할 때에, 악한 것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참으로 좋아하지만, 내 몸속에서 다른 법이 내 정신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속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을 봅니다. 나는 정말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죽음을 겪고 있는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로마 7:21~24)


바울은 이런 면을 법칙 혹은 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합니다.


하와는 속아서 생긴 선악과를 먹고자 하는 욕망에 굴복하였고 아담 역시 하와의 유혹에 굴복하였죠. 가인은 동생에 대한 증오심에 굴복하여 살인을 행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목욕 장면을 보고 굴복하여 간음을 행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살인교사를 했죠.


인간의 몸의 약함 혹은 악함은 심각한 것이죠. 불완전해짐의 영향이라 할 수 있지만 법칙이라 하는 것으로 봐서 그 이상의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치자로서 이를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창조주는 가인에게 미리 그 점을 경고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고 낙심하였느냐?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면 다시 호의를 얻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죄가 문에서 도사리고 있으니 죄의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6,7)


바울은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쳐서 종처럼 부립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정작 나 자신은 승인받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9:27)


물론 여기서 몸이란 문자적인 신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법의 몸이죠.

인간이 자신의 통치자로서 해야 할 큰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채찍이나 칼을 휘둘러 내 몰아도 이내 쉽게 들어오죠.


인간은 자신의 정신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도 통제해야 하지만 몸의 약함, 악함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바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는 훌륭한 싸움을 싸웠고 경주를 끝까지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디모데 후 4:7) 승리를 선언하였죠.

디모데에게도

“믿음을 위해 훌륭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대는 그 생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공개적 선언을 했습니다.(디모데전 6:12)”라고 권하고 있죠.


인간은 그 정신의 이상이 아무리 고상하고 뛰어나도 늘 육체의 약함에 지배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머리는 하늘을 날고 있지만 발은 수렁에 빠져 질척거릴 수 있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육체를 입고 있는 존재에게는 법칙과도 같은 것입니다. 겸허하게 고려하여야 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창조주께서 어떤 인간들을 영적 존재로 변환시켜 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육체가 실패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적으로 다스리도록 주어진 지침에 순종함으로써 온전히 축복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짐승의 육체를 저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생각이 아니죠. 개나 고양이의 몸을 인간이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죠. 물론 인간의 몸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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