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친절하라는 말이 있지만 더 큰 원칙, 근본원칙, 상위원칙이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무조건적으로 고착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절대’ 혹은 ‘무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이 위험성이 있어보이거나 미심쩍은 면이 있어 보여 선뜻 응할 수 없는 사업제의가 들어왔을 때 우선은 정말로 성공하여 소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타당성 있는 명분이 있고 법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자가 없는 것인가? 등등 여러 면으로 고려하고 심사숙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을 만한 사람이 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당신이 섬기는 신의 명령이라고 할 때 전혀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험성도 무릅쓰고 그렇게 할 때 절대성을 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이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는 공격을 하였는데 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가축은 죽이지 않고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죠.
동물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가축까지 죽인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유익한 일이죠.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사무엘에게 추궁을 받았을 때 그 가축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한 말은
사무엘상 5:22,23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했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좋아하십니까? 순종하는 것이 희생 제물보다 낫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주제넘게 나서는 것은 주술을 쓰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도 왕을 버려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였습니다.
합리적이냐 아니냐, 유익하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순종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죠.
에덴에서도 마귀는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는데 성공했죠.
황금률,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원칙이 있죠.
내가 회를 대접받기를 원하니 상대에게 회를 대접한다는 생각은 어떨까요?
더 일반적인, 더 상위의 적용방법은 나는 회를 좋아하여 그것을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상대는 육류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을 대접해야겠다고 결정하는 것이죠.
더 근원적은 적용은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한다고 꼭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상대도 그 점을 알기만 하다면 그런 음식을 원한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해야지 하는 것이겠죠.
아이를 사랑한다고 그가 원하는 사탕이나 아스크림을 원하는 대로 주는 것은 사랑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냉정한 거절, 단호한 징계가 상대에게 더 유익한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슬플지라도요. 그게 원칙이면 그렇게 해야죠.
창조주의 명령은 모든 것을 다 고려한 완전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인간의 근시안적인 사고로 거스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100세인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갖게 해준다고 했는데 천사로부터 그 말을 듣고 그의 아내 사라는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쪽 같은 아들 이삭을 낳았죠.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이식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불평 없이 두말하지 않고 그를 묶어 제단에 누이고 칼로 죽이려고 하였죠. 물론 창조주는 그때 제지를 하였습니다.
욥인 경우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할 정도였죠. 그는 저주를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로움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죠. 그러나 행동상의 불충은 없었죠. 나중에 상을 받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느님보다 의롭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하느님께 소송을 걸겠다고도 했죠.
오늘날 거의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는 자신이 하느님의 생각보다 더 지혜롭다는 여김이 있습니다.
말씀은 완전 무시하고 그와 상충되는 자신이 생각이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죠. 몇 천 년 전에 쓰인 것을 오늘날 믿는다는 것은 무식한 광신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상, 개인들의 삶이나 인격은 어떤 모습입니까? 사실 미친 것은 세상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오늘자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하지만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에 대한 그와 같은 능멸은 반드시 대가를 치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