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by 법칙전달자

손길


성서시대에 치료받은 소경과 나병환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병환자는 격리되어 살았죠. 영화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도 그렇게 살았죠.


사회에서는 그들이 삶을 유지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단조로운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대부분의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은 삽니다. 도로의 특정한 곳에 매일 나와 거의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아마도 병들어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는 그러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통증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타하지 않으면 먹고 대부분의 기간을 가만히 앉아서 보내는 것처럼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성 우울증에 걸리는 당연한 것 같은데 표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는 것 같습니다.


누가 5:12,13입니다.

또 한 번은 그분이 어느 도시에 계실 때에,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수를 보자 얼굴을 숙이고 엎드려 그분에게 “주여,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분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내가 원합니다! 깨끗하게 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즉시 그의 나병이 사라졌다.


사실 예수는 말씀으로만 또 말씀도 하지 않으셔도 즉석에서 완치시킬 수 있었죠. 그런데 이 경우는 만져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 손길의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누가 그런 식의 손길로 전신 나병환자를 만지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 손길은 만성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치료해 주었을 것입니다.


“내가 원합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음색과 음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분은 인간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동정심이 있더라도 능력이 안 되므로 보고만 있어야 하죠.


그 당시 예수는 충격적인 존재였죠. 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분을 쫓아다니면서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몰래 옷깃을 만진 여인도 있었습니다. 부탁을 받았을 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원격으로 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영광의 반영이자 그분의 본성의 정확한 표상으로서 모든 것을 강력한 말씀으로 계속 존재하게 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정결케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히브리 1:3)


한 번은 예수께서 좌가 사해졌다고 선언하시자 비방자들이 당신이 무엇인데 감히 죄를 사하느냐 신성모독이라고 마음으로 비난하자 죄를 사한다고 하는 것과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쉬우냐고 하면서 죄 사하는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죄가 사해졌다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변화라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그런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누워있는 중풍환자에게 들것을 들고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실제 그런 결과가 없으면 낭패이고 망신이죠. 그러므로 그 말을 하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죠. 이 어려운 것을 예수가 하였으므로 죄를 사하는 능력은 더 확실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가 2:5~12)


예수는 믿음을 가지고 접근해 오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완치시켰습니다. 조금의 과시도 없었고 않았고 아무 물질적인 것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완치함을 얻었죠.


죄 사함의 결과이지요. 예수께서는 매우 관대하고 쉽고 친절하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러함을 보여준 것은 보여주기용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때 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결국은 다시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된 사람들도 그랬죠. 진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천년 통치기간에 있을 일들을 예시로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말로만 하면 믿기 힘드니까요.


그 당시의 병 고침이나 부활은 맛보기였습니다. 본격적인 것은 곧 있을 천년 통치가 시작되면서 있게 되죠. 그때는 다시 병에 걸리지 않는 치료를 받게 되고 다시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부활을 받게 되죠.


사람들은 통치자로서 예수께 순종하고 공경하여야 하였습니다. 그 점은 지금이 더 실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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