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by 법칙전달자

어떤 사랑


인간은 원리적으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참 사람이 무엇인가를 더듬어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은 사랑과는 워낙 동떨어져 있는 것이죠.


하느님은 사랑이므로 사랑과 관련된 것 역시 그분이 규정합니다.


이러한 지시를 하는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위선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1:5)


사랑은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위선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이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양심이 선하지 않거나 믿음이 위선적이면 사랑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각각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만 해도 많은 양의 지면이 필요할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조금씩 다루긴 했습니다.


고전 13:7에서는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했는데 믿음은 행동의 원리, 원동력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죠. 기독교의 종교적 신앙이라는 것은 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 중 아무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죠. 말씀대로 행한다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위선적입니다.


믿음은 철저히 지식에 입각한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것이죠.


어떤 사람의 인간됨됨이의 바탕을 보고 관련된 어떤 지식에 입각한 확신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목숨을 건 확신을 갖게 될 수 있죠.


일시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모습이 보여도 그것 때문에 혼란을 일으켜 그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하죠.


언행이 일치하지 않거나 표리부동한 것은 위선적인 것을 의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의식상태와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 관심 밖의 것일 것입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몇 번 접하지 않고서도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인간성이나 진실성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료인간에 대해 사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중요하므로 그의 이러한 사랑에 대한 수용성은 중요합니다. 그마저도 간파하여 그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한결같이 일관성 있게 구현될 때 위선이 없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과 관련해서는 다른 글에서 몇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할 줄 모르는데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 위선이 없는 믿음에서 그것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참사람을 갈망한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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