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허황

by 법칙전달자

허황


“스승의 그림자도 밝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님그림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군주의 위엄’이라는 개념도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과도한 존경인 것입니까? 방귀 뀌고 똥 싸는 인간인데요.


“이 웅대한 우주를 볼 때 인간은 얼마나 왜소하고 하찮은 존재인가?”라는 말도 있죠.


사실 물리적 크기는 존엄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의 단순한 착오에 불과할 수 있죠. 영적 크기가 상관이 있는 것이죠.


개미가 작아서 하찮습니까? 체중이 400kg이 넘는 사람은 그로 인한 위대성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고래나 코끼리가 그 크기 때문에 존엄성이 생기는 것입니까?


물리적 크기는 그 본래적 가치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각각의 사물은 그 기능과 역할에 따른 적절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리적 현상은 관련이 있습니다. 배설시스템은 겸허를 기본적인 덕목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 대해 가져야 할 원칙적인 존경, 존중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자제력이 없이 또한 탐욕스럽게 많이 먹어 과체중이 되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사람은 인격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존경을 받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불완전한 인간을 그림자도 밟는 것을 조심할 정도로 존경한다는 것도 부조리한 면이 있습니다.

인간 개인에게 나타내는 어떤 찬사나 영광, 주목하는 정도, 존경을 표현하는 말 심지어 생일을 기념해 주는 것도 과도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가 적절해야 하는 것이며 원칙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아가페)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365일, 24시간 내내 그때가 그의 생일인 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면은 전혀 없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이 점철된 수치라고 할 수 있는데 태어난 것이 뭐 그리 축하할 만한 일입니까?


지금의 정치인들처럼 그런 구역질 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면 그 태어남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죽어 마땅함을 역력히 드러낼 뿐인데 축하라뇨. 지나치게 불합하고 과도한 것이죠.


사실 정치인들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죽어 마땅한 어떤 면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격의 존경은 과다한 것입니다. 사실 군주들은 그러한 존경을 받아왔죠. 어떤 성격을 지닌 절 자체가 죄악스러운 존경의 표현인 것입니다. 원칙을 크게 벗어난 것이죠.


인간에게는 숭배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만족시켜야 편안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통치자도 인간 심리의 그러한 면을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하가도 한다는 것이죠. 어버이 수령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은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존재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존경심 그 자체가 행복인 면이 있습니다.


인간 서로에게 원칙에 입각한 존중심이나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리고 행복의 필수입니다.

그런데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 방귀를 뀐다고 해서 희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림자 밟는 것을 피할 정도로 과도해서도 안 됩니다.


그림자나 대소변의 배출은 물리적 생리적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의 크기처럼요.


존엄성을 상징하는 것도 좌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지니고 있는 존영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가 함양한 즉 머리로는 진리를 배워왔고 가슴으로는 사랑을 함양해 왔고 몸으로는 쌓아온, 창조주관점에서의 선행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적 존영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크기의 존경을 보이는 것이 타당하죠.


존경의 태도에서 허황됨이나 원칙에서 벗어남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그 존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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