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과 사감(私感)

by 법칙전달자

주관과 사감(私感)


이글에서는 어휘의 사전적 정의와 꼭 일치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감은 개인적 감정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감각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주관이라는 것에도 진위의 판가름이 필요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깊게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한 부분이 된다.” 이런 성격의 말들은 진위나 선악을 따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반영되어 있는 교훈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죠. 해를 끼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남녀 성기의 결합을 악수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로 생각한다.” 이런 사상을 받아들였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생길 수 있죠.


견해라는 것도 머릿속에 있는 것이 있고 마음에 이르러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머릿속에 있기만 한 것은 단지 사변에 불과한 것일 수 있고 뇌의 뒤편의 쓰레기 통속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매우 편차가 큽니다. 경험의 여부나 정도, 심미안의 발달정도, 필요의 정도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같은 음식이라고 문자 그대로 모래알 씹는 것처럼 인상을 쓰며 억지로 먹는 경우가 있고 아니 이럴 수가 이것에 이런 맛이 있다니! 하며 도취되어 정신없이 먹을 경우가 있는데 문자 그대로 며칠 굶은 상태에서 웬만한 음식은 그렇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배도 전혀 안 고프고 몸도 안 좋지만 초대받은 장소에서 사양하는 것은 무례일 수 있어 부득이 최소한만 먹는 경우 한숨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조금의 과장도 아닙니다.


몸에서, 정신에서 자연스러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을 통해선 그다지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심미안, 감성, 정서가 개발되지 않아 같은 경치나 음악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 할 때 이런 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글에서는 필요라는 측면을 생각해 봅니다. 먹는 것을 통한 행복은 베 고팠을 때, 적당량을, 천천히, 성적인 행복도 그러합니다. 필요가 절실한 타이밍과 분위기, 기술 등등이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음악이나 그림, 경치에 대한 것은 심미안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에 딸린 것도 아닙니다. 눈과 귀가 이런 측면에서 열려 있는 정도에 따른 것입니다.


바둑을 둘 때나 강의를 듣거나 독서를 할 때의 지적 즐거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한 개인의 행복은 지능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어야, 깨달음이 있어야 즐거움도 있는 것이죠.


이해의 대상은 지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즉 학문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종교나 철학적인 것은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는데 유익하지 않은 것이 맛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3)


사람들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거부하죠. 그것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고 흑백 TV나 286 컴퓨터나 되는 것처럼 거절하죠. 그런 쪽으로는 그들의 현대의 최첨단 주관이나 사견이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늘 왕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자 숨겨 놓고는 기뻐하며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또한 하늘 왕국은 좋은 진주를 찾는 여행하는 상인과 같습니다. 그는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가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신속히 팔아 그것을 샀습니다.(마태 13:45,4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십시오.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십시오.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여러분을 해칠지도 모릅니다.(마태 7:6)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영적으로 굶주려 그런 면으로 아사직전의 사람이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접했을 때 그가 느끼는 행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극심한 기아 상태에 있지만 혹은 중병에 걸려 있지만 영적인 음식이나 약에 대한 필요를 전혀 못 느낍니다.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에 대해서도요.


그들은 부실한 음식 때문에 부실한 주관과 사감이라는 것을 갖게 됩니다. 그런 것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살아야 하는 데 살 수도 없습니다. 삶에 이르지 못하는 생각이나 감정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고 허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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