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나으셨나요?

by 법칙전달자

왜 날 나으셨나요?


신의 부재증명으로 내 세우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이 겪는 자기 책임이 아니게 보이는 고통과 슬픔입니다. 전지전능한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모든 현상은 창조주가 허용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긴 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분을 비난받는 것이라면 비난받는 당사자가 가장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우선 예수는 다음 경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그분에게 물었다. “랍비, 누가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이 눈먼 채로 태어났습니까?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의 부모도 아닙니다. 다만 그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9:1~3)


바울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합니다.


내가 야곱은 사랑했으나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불공정하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내가 동정심을 나타내려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바람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너를 그대로 두었으니, 곧 너와 관련해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하시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완고해지게 두기도 하십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그분은 왜 아직도 허물을 찾으십니까? 누가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이여, 당신이 누구이기에 하느님께 말대꾸합니까? 빚어진 것이 빚은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하겠습니까? 도공이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 보이고 능력을 알리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멸망받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에 대해 오래 참으셔서 관용을 베푸셨다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셔서 자비의 그릇들에 대한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 하셨다면, 그것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 자비의 그릇들은 그분이 영광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것인데, 바로 우리들입니다.(로마 9:13~23)


예수나 바울의 대답은 맥락이 같습니다. 하느님 자신의 뜻이나 특성과 관련된 어떤 점을 피조물들에게 알리기 위함인 것이죠.


유전자에 소경이나 교만과 같은 유전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성적인 성향은 유전적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에는 에서의 야성적인 특성보다 야곱의 사려적인 특성이 더 유리하였죠.


모든 신체적 정신적 장애나 기형은 물론 창조주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허용되고 있죠.


인간은 그분의 공의도 자비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에서 파라오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완고하게 하였다는 것은 완고하지 않은 상태를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완고한데 상황을 통해 그것이 드러나게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그에 따른 보응을 다른 피조물이 납득을 하니까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죠. 그러나 사람사이의 부딪침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죠.


그것이 온전히 드러나서 공의가 시행될 때 그분께 순종하는 피조물들에게 열렬히 환영받게 되는 상황이 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시죠.


지금은 인류 전체가 돌이킬 수 없이 완고하죠.


마음을 바꿀 사람은 거의 다 바꾸었습니다. 영적 방주에 타 있죠. 죽어도 바꾸지 않을 사람만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의 그릇들이 미리 준비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방 사람들에게 갑니다.(사도 13:46)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신자가 되었다.(사도 13:48)


인간의 성향의 어떠함은 유전자의 기록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러한지는 상황을 접했을 때 나타나죠. 기본적으로 사람은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창조주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났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무시하는 지의 여부는 이미 확고하게 다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처럼 세상이 황폐화되는데 기여해 왔을 뿐입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사람들이 그러하였으므로 합당한 보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왜 날 나으셨냐고 원망할 때가 아닙니다. 주제넘게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욕을 하면서 투덜거리며 살 때가 아닙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 인간 본연의 성향을 지니게 되면 원망의 원인이 완전하게 소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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