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修辭)가 아니다.
수사법 중에 비유법이 있고 그중에 의인법이 있습니다. 성서에 이 의인법처럼 보이는 화법이 매우 많이 사용되는데 그것이 실제 인격체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무엇'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성령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어떤 것인데 어떤 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죠. 여호와, 예수와 동등한 신적 존재로 성령하느님과 같이 칭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에는 본질상 비인격적인 것이 그런 식으로 의인화되어 사용되는 경우는 무수하죠. 단지 이러한 화법은 비유법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영어에도 무생물주어라는 공식적인 용법이 있죠.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을 하려면 의역을 해야 하죠.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애니미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무생물주어 같은 용법과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추상적 개념은 추상적 사물이라 할 수 있고 인격체처럼 행동하는 대상으로 여길 때 더 실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 안에서 계속 왕으로 다스려 여러분이 몸의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인간이 유일하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자신의 정신과 마음과 몸인 것이죠.
창조의 법에 따라 자신을 다스릴 권한도 있고 책임도 있는 것이죠. 그 통치의 결과에 생사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에게 그 권한을 양도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자기를 종으로 내주어 순종한다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을 가져오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를 가져오는 순종의 종이 됩니다.(로마 6:16)
그것들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으므로, 여러분은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있으며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1~23)
인간은 의식적으로 죄가 자신의 왕이 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몰래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죠.
어떤 사람에 대한 증오가 지배하여 자꾸 그에 대해 화를 내고 욕을 할 수 있죠. 자신에 대한 죄책감에 지배되어 통제할 수 없이 자신에 대한 욕설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 마약, 니코틴에 중독되어 그러한 것을 보거나 행하거나 흡인하는 일을 멈출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어떤 악감정, 좋지 않은 습관, 그릇된 욕망들이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아 돌아가면서 수시로 그것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중독성이 강하여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그런 것들을 인격체처럼 여기고 마치 자신이 왕인 것처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며 그것들에게 “너희는 내게서 나가고 다시는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 하고 호령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쉽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의 주변에 있다가 호시탐탐 들어갈 기회를 노리죠. “뭐? 그래? 너 우리가 없으면 견디기 힘들 걸?”하면서요.
금단증세도 강하여 그런 것들을 다시 불러들일 유혹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전쟁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기관총으로 갈겨대야 할 지 모르며 경우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강력한 영적 무기를 소지하게 되었다면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어떤 인격체나 되는 것처럼 마귀나 되는 것처럼 혐오스럽게 느끼고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등을 돌리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 내 뒤로 물러나시오! 당신은 나에게 걸림돌이오. 당신이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오. (마태 16:23)
베드로는 그런 식으로 몰아내야할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예수가 이를 사탄이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그런 것을 악한 인격체로 간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영향을 받아 갖게 된 나쁜 생각이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서의 어떤 표현들을 수사법상의 의인법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료나 미워할 원수처럼 여겨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지혜나 사랑 같은 것은 자신의 영혼에 항상 함께 있는 절친한 친구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자신을 지배할 수 있게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이미 중독되어 떨쳐 보내는 것이 큰 고통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창조의 법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생각, 감정, 습관, 태도, 성향, 욕망 등등은 그것을 마귀로 보고 그것과 대적하여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도망할 것입니다.(야고보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