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성과 행동성
성향의 발전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됩니다.
성향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중요한 것으로는 행동성과 사려성이 있죠. 이는 대립되어 보일 수 있어서 두 가지를 두드러지게 갖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행동성이 두드러진 대표적인 사례는 돈키호테죠. 우선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것이죠. 수습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극단적인 반대는 햄릿이라고 합니다. 생각만 거듭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죠. 돌다리를 여러 번 두들겨보고 안전함이 확인되는 데도 건너지 않는 스타일이죠. 돈키호테는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고 무턱대고 밟고 건너는 스타일이고요.
그런데 사람이 유능하게 되려면 이 두 특성 모두를 두드러지게 지닐 필요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드물죠.
그런데 성서에는 바로 그런 면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있죠.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선봉에 선 사람이죠. 한편으로는 그 당시 최고 교육기관인 가말리엘 문하 출신으로 그의 친구인 로마 총독에게 너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죠. 그의 필서에 나타난 문체를 보아도 그 점(사려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은 그리스도인 조직의 발전에도 꼭 필요하였기에 예수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를 개종시켰죠.
다른 모든 사도들을 합한 것보다 활약상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 자신의 성향에 성령으로 부어진 능력이 더 해져 예수의 예언대로 그분보다 더 큰일을 이루었죠. (요한 14:12)
급하거나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낭패에 처하게 될 수 있고 비난의 소지도 발생하겠지만 사려성이 뒷받침되어 있다면 결실만 풍성하게 맺게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요. 예수도 두 가지 면에서 탁월하였죠. 두 번씩이나 성전에서 상을 뒤엎고 채찍으로 상인들을 내 쫓기도 하였죠. 두루 다니면서 매우 열정적으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면에서 완전한 본이 되었죠.
이 두 가지는 매사의 어떤 활동에도 적용이 됩니다. 뭔가 행동은 활발히 하는데 그에 비해 맺어지는 결과가 없다면 사려성 부족입니다. 그리고 사려성이 뛰어나도 우유부단하여 결단력 있게 적시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결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특성 모두 습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생각 즉 설계가 완벽하고 정확하다면 행동으로 옮겼을 때 예상하는 결과를 얻게 되죠. 물론 동작도 정확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 처음부터 완전하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도 만 30이 지나서 활동을 시작했죠.
정확하게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과 그에 따른 행동에는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죠.
그런 훈련이 안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면 그것부터 겸허히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신중히 숙고한 후에 올바르고 정확하게 행동하는 훈련을요.
반드시 해야 할 언행과 하지 말아야 언행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정서적, 지적, 도덕적, 영적인 모든 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사려성과 행동성을 발전시킴으로써 유능하고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