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예지(豫知) 예지(叡智) 정조(情操)

by 법칙전달자

예지(豫知) 예지(叡智) 정조(情操)


사전적 정의와는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영적 성장에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성서에 예지(豫知)라는 단어는 사용됩니다. 전지(全知)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만물의 창조주는 창조주이므로 당연히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계시므로 그런 면에서 전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일부 단서나 부분적인 정보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도 자시의 방의 침대처럼 그 처분이나 향방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달려 있다면 24시간 후의 침대의 위치를 예측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가만히 두면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이동시키면 이동되는 것이므로 예측할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니지요.


창조주도 모든 것이 그분이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므로 창조주가 미리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은 주술 자체가 호응을 이루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미리 아는 것이라면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 해 놓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미리 알았느냐 몰랐느냐 질문을 창조주에 대해서 사용하는 것은 “모양이라는 것은 행복한가 그렇지 아니한가”와 같이 어법상 주줄이 호응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알았다는 것은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의식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의식 있는 존재는 자유의지라는 갖지 않기가 불가능한데 특정한 행동을 허거나 하지 않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개발한 랜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만약 1에서 10,000 사이 중 하나를 랜덤 하라고 했는데 프로그램 개발자가 그 수치가 무엇인지 미리 안다면 랜덤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모른다고 해도 무능한 무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의지의 창조는 가장 신비하고 가장 신성하고 가장 큰 지혜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예지(豫知)가 사용된 용법 중 하나만 살펴봅니다. 창조주는 인간이 범죄 한 직후 그 범죄로 인해 창조의 목적달성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바로 대책을 마련합니다. 예수포함 144,001명으로 된 천년 왕국의 정부가 그것이죠. 그리고 불완전하게 된 인간 후손 중에 그럴 자격이 있는 존재가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인간도 어떤 사람을 잘 알면 그 사람은 죽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확신을 가진 판단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아들 에수나 그분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 그분께 충성을 나타낼 것을 알고 있었죠. 이는 창조의 정보에 의한 것이며 특정 개인들이 그렇게 되도록 예정 즉 프로그램해놓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더하여 그 자격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재량입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예정되었다는 것은 애초에 자신들의 운명이 그렇게 프로그램되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에 대한 숭배를 선택하였는데 그렇게 되다 보니 그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은 이러한 예지 혹은 예정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므로 중략합니다.


인간의 의식의 3요소는 생각, 감정, 행동 혹은 지, 정,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 혹은 지혜라는 것은 그 효력의 지속의 정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적용이 순간적인 것은 기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혜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지속적인 것을 의미하죠. 몇십 년 전의 소설이나 몇 달 전의 신문 사설 같은 것은 지금 시점에서 잘 맞지 않는 데 그 당시의 일시적인 기간에만 적용되는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 중에서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예지(叡智)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전이죠. 경전 같은 것이죠. 그중에서 일 순위로 꼽는 것이 단연 성서입니다. 수 천 년 전에 쓰인 것이지만 오늘자 조간신문의 내용보다 더 실용적이라고 하는 것이죠. 구구절절이 그러합니다.


정에 있어서는 보통 기분이나 감정이라고 할 때는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인 경우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좀 더 지속성이 있는 경우를 정서라고 하죠. 그리고 영속성을 띤 것을 정조(情操)라고 합니다.


이 예지(叡智)나 정조(情操)는 성서에 그 단아가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있죠. 하느님의 지혜, 참지혜, 진리는 당연히 영원한 것입니다. 불변의 것이죠. 이는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입니다.


또한 사랑, 하느님에 대한 사랑, 진선미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것이어야죠. 배우자에 대한 사랑도 그러한 것이어야죠. 정조(情操)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인 수명이 100년도 안 되는 터무니없이 짧은 것이어서 예지(叡智)나 정조(情操)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아 매우 생소할지 모르지만 그런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영원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지(叡智)와 정조(情操)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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