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미래
인간이 보기에는 틀림없이 미래의 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인데 이미 이루어진 과거형으로 표현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역시 수사법상의 표현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식빵을 비유로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식빵의 좌측 끝은 우주가 시작된 과거이며 우측 끝은 우주가 소멸할 미래이죠. 그 식빵은 무한한 길이어야 하지만 한 50cm 된다고 할 때 1cm라도 수 십 억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죠. 그 식빵의 한 단면은 그 시점에 있어서의 우주의 전체 모습이 되죠.
창조주라면 이 모두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공식빵의 전체를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인간은 어디론가 가려면 공간의 이동과 아울러 시간의 경과도 필연적으로 수반되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자신의 경험 중심입니다. 가보지 않은 곳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신대륙의 존재를 몰랐을 때 구대륙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바다 멀리 항해하여 인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도착한 곳이 신대룩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인도라고 잘못 생각하였지만 아직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고 있죠.
그들은 미지의 미래를 향한다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곳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한 곳이었죠. 곧바로 신대륙도 약탈과 살인이라는 범죄의 대상이 되었죠. 인간의 손길이 닿게 된 곳이니 그럴 수밖에요.
부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울 사람에게는 부산은 말로만 들은 미지의 미래의 장소라고 생각할 수 있죠.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지요. 그러나 인간의 생각하는 방식이 그러합니다.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과장된 홍보를 보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그곳에서 살게 되는 그러한 것이 될 수 있습니까?
미래의 진실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인격적인 것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지구나 태양의 1년 후의 위치는 정확히 정해져 있죠. 인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낙원이나 도시들도 그러합니다. 어떤 개인의 시각에는 부산이나 신대륙이 미지의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고 미래와 관련지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근시안적 생각일 뿐입니다.
부산이 이미 존재하고 신대륙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이런 인식은 고대인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죠.
수 천년 후에 있을 미래의 도시에 대해
그는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히브리 11:10)
이미 하느님이 그 도시를 건축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죠. 아브라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여라.”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이 이루어졌다.(계시 5,6) 미래형 표현이 없습니다. 현재형과 과거형이죠.
이인슈타인의 시공식빵이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이와 같은 무생물적인 마련과 관련해서는 인간이 미래라고, 그래서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실과 일치한 올바른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미래에 그곳에 있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죠. 미래의 진실은 없다는 말은 의식 있는 존재에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부산에서 살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그리로 가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 도시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러나 증거는 명백하죠.
마찬가지로 미래의 낙원, 신세계에 대한 것도 그러합니다, 조금만 조사해 봐도 그 증거의 확실함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처럼요. 그러면 신대륙을 향한다는 배를 마음 놓고 타고 바다 먼 쪽으로 갈 수 있죠.
“뭐? 지구가 둥글고 공중에 떠 있다고? 그러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게. 다 떨어져 버릴 거 아냐? 말도 안 돼!” 하는 편견을 굳히고자 하면 살펴보지 조차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에 예언된 미래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미신적인 낭설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행로를 그리고 행하면 반드시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현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과거의 시점으로는 미래인 것이죠. 이미 자동차가 넘쳐흐르고 컴퓨터와 휴대폰이 있는 그러한 미래에 지금 살고 있는 것이죠. 지금 시점으로는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죠.
시공식빵을 비스듬히 자르면 100억 광년 떨어진 어떤 행성의 수 백 억 년 후의 미래를 그 단면의 어떤 지점에서 현실로 생생하게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의 그 행성의 어떤 존재는 그렇게 하여 수 백 억년 전의 지구의 과거, 우리가 현재라고 하는 지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지 모르죠. 자동차라는 원시적인 교통기관을 사용하고 있는 그 태곳적 과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