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유
물질적인 것은 같은 질과 양으로 공유하기가 불가능하죠. 나누려면 양이 줄어들거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적이 아닌 것도 공유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권력이죠. 일시적으로 몇 사람이 공유하는 듯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분쟁이 생겨 일인화되는 것입니다. 안정적으로 독점하기 위해 그 누구라도 죽이고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최고 권력이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이 두 사람도 공유가 안 되죠.
물론 권력 분립이라는 것은 공유가 아닙니다. 종류가 다른 권력이기 때문에 충돌의 여지가 약한 것이죠.
국회 같이 어떤 집단이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공유라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본래적인 공유는 우선 지식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면서 전지를 지향합니다. 적어도 만지(滿知)를 지향하죠. 타인에게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죠.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인간들에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이 있는 것이죠. 지식을 쌓아갈수록 공유된 것이 많아지죠. 그럴수록 서로의 교제도 더 유익할 수 있죠. 사랑이나 의, 겸허 같은 특성이나 태도도 그러하죠. 상대가 그 공유의 정도가 클수록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죠. 어떤 자격이나 승인도 그 성격에 따라 무한의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도 공유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은 성격이 다릅니다. 물리적 공간은 공유에 제한이 있죠. 자신만의 독점 공간이 필요하죠. 음악은 공유할 수 있어도 공간을 차지하는 미술작품은 공유에 제한이 있습니다.
이제 본론에 이르면 권력이란 있어서는 안 되는 악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권력을 갖게 해주는 투표 같은 행위도 악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 권력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각각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으로 상징됩니다. 모두 사형죄에 해당되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왕국의 통치자 수는 144,001명인데 그들 모두가 왕 겸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친구이기도 하고 형제이기도 하고 신부반열이기도 하죠. 1세기 사도들은 모두 이에 속하지요.
그들은 모두 자격 있는 통치자이지만 그들의 통치는 결코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들 사이의 분열이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 모두는 사랑으로 밀접히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낙원으로, 땅의 사람들을 완전한 상태가 되게 하는 섬기는 봉사를 하게 됩니다. 예수가 당시 제자들을 섬겼던 것이 연상이 되죠.
그들이 분담하는 역할 같은 것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지구 전역을 하나의 나라로서 천 년간 통치할 것입니다. 권력의식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확립된 자격과 능력으로 공동적으로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 통치역량은 순수하게 공유의 성격입니다.
동료의 역량이 뛰어난 것은 전적으로 축복의 원인입니다.
인간들은 지식이나 기술의 나눔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사회의 삶의 전체의 질의 향상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상대에게 배울 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와의 교제가 더 행복한 것입니다.
동료가 실제로 왕으로서의 역량을 갖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결코 교만해지거나 부당한 권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만족하고 있습니까? 이미 부유해졌습니까? 우리 없이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으로 다스릴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고전 4:8)
바울은 동료들이 진정한 왕으로서의 역량을 갖기를 진정으로 바랬습니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적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은 축복받으신 분!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누가 19:38)
예수는 왕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함에 대한 완전한 본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든 동료왕들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셨죠.
그 왕권은 이 세상의 세속통치자들처럼 독점하는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어떤 직책과 같은 것이라 질서와 효율성을 위해 수가 정해질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것도 천년이라는 한시적인 것이었죠. 인원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격 자체는 무한히 영원히 공유할 수 있는 성격인 것이죠.
공유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보이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쟁성이 있는 것들이죠, 반드시 다툼이 수반됩니다. 권력뿐 아니라 1등이나 금메달, 최고라는 것들이 그에 해당됩니다. 또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100m를 15초에 뛰어도 그보다 느린 사람들과 경주 하면 1등이 되죠. 그렇게 명예로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변성이 있는 일시적인 것이죠.
그러나 무한히 공유가 가능한 것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영원한 것이고 경쟁성도 전혀 없습니다.
동료가 지식이나 재능을 갖는 것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죠.
그러나 이 세상의 잘못된 상대경쟁 체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합격 불합격이나 당락을 좌우하고 순위를 달라지게 하며 받을 몫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니가 아니었으면 내가 붙었을 텐데.”가 되는 것입니다.
어그러져도 너무 어그러진 세상입니다.
곧 아름다운 공유만이 지배되는 풍요롭고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