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실제로 임의적인 것은

by 법칙전달자

실제로 임의적인 것은


어떤 남녀는 서로 처음 본 순간에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저 사람은 나의 운명이야.”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직업이나 활동을 하면서 나는 바로 이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조물주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자살하면서도 “운명이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수도 운명적이라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결정적인 가치관,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죠.


그야말로 불확정에 따라 발생하는 우연적이거나 임의적인 혹은 자의적 것이죠.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한다. (전도 9:11 : 예기치 않은 때에 예기치 못한 일이 모두에게 닥친다.)

우연히 임하거나 자의적 선택에 의한 것이 마치 신의 섭리 혹은 계시이거나 예정이거나 운명, 숙명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위의 신의 말씀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동시성의 원리라는 것에 의해 어떤 필연성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임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우연적 임의적인 것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반면 필연적 결정적 절대적인 것에 대해서는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 사실상 범죄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들이 태반입니다. 죽게 되는 원인이죠.


참과 거짓, 선과 악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일방적이고 결정적이고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중력과 같은 자연의 법칙처럼요.


어떻게 신의 존재를, 창조여부를, 인생의 목적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철학이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과 긴 시간에 의한 진화의 결과가 인간이며 삶의 목적 같은 것은 없다, 있다면 자신의 생존, 유전자의 보전이라고 하는 따위의 주장이 그런 것이죠. 선과 악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짐승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신과 같이 선언하는 주제넘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 자체도 맹목적으로 우발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생각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 그 자체는 거짓되지 않습니다. 거짓된 중력이란 있을 수 없죠. 거짓된 나무나 거짓된 물 혹은 거짓된 다람쥐라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어떤 다른 것보다 거짓됩니다.


임의적인 것을 결정적인 것으로 결정적인 것을 임의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죠.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임의성이 결정성을 따른 것입니다. 이웃에게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은 결정된 절대적 법칙입니다. 이를 선택하여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임의이죠.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러합니다. 거짓을 전하는 것은 결정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악입니다. 물론 인간들은 악한 언행을 공식적으로 하죠. 임의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한 책무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꼭 하늘이 결정해 준 것이나 되는 것처럼요.


많은 살인을 하고 왕권을 탈취했을 때 마치 하늘의 뜻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관례처럼 되어왔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운명이어서가 아니라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언행들이 그렇습니다. 원칙적으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적이고 맹목적이지는 않습니다. 의도가 있고 계획적일 수 있죠. 자유의지 즉 의지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자유는 임의적인 것이지만 의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뜻을 두어 필연적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의도를 결정적인 것에 맞추면 그러면 결정적인 것이 되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운명이 그에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운명을 “타의에 의해 주어진 조건”이라 정의합니다. 신에 의해 결정된 미래가 아닌 것이죠. 그리고 자의에 의해 극복되거나 조정될 수 있죠.


이삭이 아브라함의 이들인 것은 그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명에 해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필연에 의한 결정적 지식에 따라 친척집으로 가서 리브가를 보고 스파크가 일어나 저 여인은 나의 아내이다라고 결정한 것은 본질상 임의적입니다. 본인이 결정한 것이며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신이 강제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부부관계가 절대적인 영속성을 지닌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임의성과 결정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로 임의성이 먼저입니다. 자유의지, 자유의 법칙은 우주의 그 어떤 것보다 선행합니다. 신이나 창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임의로 생각하는 것을 우주나 신이 제지하지 않죠.


하느님은 사랑이며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까지 죽여 그것을 표현하였지만 거부하면 그 사랑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거부하는 그 자유, 그 의지가 우선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 신적인 존재죠.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고 자신이 신이나 되는 것처럼 선언할 수 있죠.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결정되어 있는 좋은 것들은 누리지 못합니다. 생명도 행복도 자유도 평화도 누리지 못하죠.


그가 생각한 그대로 죽어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임의로 그렇게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의 운명을 그가 마치 신인 것처럼 그렇게 결정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임의적 결정에 따라 그 생각을 결정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진리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임의로, 자의로, 실제로 결정적인 것을 따를 수 있습니다. 제가 이와 같은 글을 쓰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인간이 이웃에게 진리를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중력처럼 자연에 내재된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영적 도덕적 원칙입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아울러서요


대다수 인간들은 이 원칙 역시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제넘음을 보일 것입니다.


쓰레기이며 배설물이라고 선언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서로 쓰레기라고 하면서 해 아래서 그런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멸망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서로 이념적으로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하여 “인민의 적을 처단하라.”고 권력을 기반으로 임의로 명령을 내려 수천만의 목숨이 사라지기도 하였죠.


인간도 그러한데 창조주가 쓰레기로 규정하고 홍수로 싹쓸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홍수 자체도 예정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른 임의적인 것이었죠.


창조주의 어떤 임의는 절대성을 지닙니다. 그것이 선언되는 순간 그것은 운명적인 결정적인 것이 됩니다.


곧 있을, 이 악한 세상에 대한 청소도요. 임의적인 것과 결정적인 것을 분간 못하는 쓰레기는 소각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으며 운명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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